드라마는 내 안에 있었다.
몇 년 전 어느 날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날이었다. 같은 시각에 일어나서 씻고 출근을 했다. 회사 업무는 10년이 넘어가자 익숙하고 편안하다. 오늘의 업무는 일 년 전, 아니 십 년 전과 동일하다. 단순 복사 붙여넣기... 기억이 나지 않으면 지난해 업무일지를 보면 된다. 내년에도 난 같은 일을 할 것이고 아마도 그 후년에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많지도 않지만 적지도 않은 월급과 대출금은 나를 이 생활을 유지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마치 탈출구 없는 미로에 내가 갇혀버린 것 같았다. 뭔가 찜찜하지만 편안한 이 안락함은 나를 점점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깊숙히 빠져들고 있었다.
“00에 다니고 있는 000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하는 말이었다. 앞에 00을 빼면 난 무엇일까? 다니는 곳이 현재 나의 아이덴티티를 전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냥 000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회사에서 갑자기 잘리면 난 어떻게 될까? 공포가 엄습해 왔다. 내 목에 걸린 사원증이 넌 영원히 여기 노예라는 것을 증명하는 족쇄같이 느껴졌다. 내가 사 먹는 테이크아웃 커피, 옷, 책등이 나를 영원히 여기에 머물게 할 것 같았다. 내 목에 걸린 사원증을 달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취준생을 보고도 난 응원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날 부럽게 바라보는 그들의 눈을 보면 ‘곧 머지않아 너희도 나와 같아질 거야’라고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난 달라져야 했다. 회사 간판을 떼고도 경쟁력 있는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온전히 살아남고 싶었다.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내가 아니라 자유인 나로서 인정받고 싶었다. 그렇지 않다면 난 영원히 여기에 머물다 사라지게 될 것이다.
퇴사 후에 원하는 일을 하는 여자의 인터뷰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읽는 내내 내 이야기 같고 내 마음이 후련해져 왔다. 나도 저 여자처럼 될 수 있을까? 매달이 들어가야 하는 돈을 내가 어디서 벌 수 있을까? 한숨이 밀려왔다. 내가 아무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졌다. 당장 퇴사를 할 수는 없어도 그냥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하얀 백지를 들고 적기 시작했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사소한 것이라도 적어 나갔다. 겨우 20개를 채웠지만 더 이상 진전이 나가지 않았다. 순간 나는 내가 나를 잘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뭘 잘하는... 뭘 좋아하는지... 두리뭉실하지 명확하지 않았다. 나를 알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나는 나를 알기 위해 2가지를 하기로 했다. 내가 매일 느낀 감정, 생각을 기록하자. 그리고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니 닥치는 대로 해보자.
그때부터 시간 나는 대로 강연을 다니고 여러 가지를 배우고 사람들을 만났다. 연극 무대에도 서고 독서모임, 영화모임, 운동모임, 글쓰기 모임 등을 할 수 있는 한 다했다. 그러기를 일 년 넘게 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내가 원래 드라마를 쓰고 싶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 삶이 힘들고 지칠 때면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많이 위로받았다. 좋아하는 드라마는 대본을 구해서 읽고 좋은 대사는 달달 외우곤 했다. 다이어리 귀퉁이에 색깔펜으로 정성스럽게 필사를 하기도 했다. 연애할때도 드라마속 대사를 따라 해서 남자를 꼬시기도 했다. 다행히 내가 만난 남자들은 드라마를 잘 보지 않아 정말 내가 했던 말로 지금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드라마를 써서 사람들을 웃기게도 하고 설레이게도 그리고 위로하고도 싶었다. 내 맘속에 깊이 들어있는 꿈을 찾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유명하다는 학원을 알아보고 스터디를 시작했다. 강연이란 강연은 다 듣고 다녔다. 그러기를 몇 년째하고 있다. 물론 생각보다 글 실력은 늘지 않아 답답할 때도 많다. 더 이상 회사 생활이 무료하지 않다. 이것 역시 좋은 드라마를 쓰기 위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기운이 난다. 치열하게 나를 탐구하는 과정 속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발견한 순간 드라마가 튀어나왔다. 드라마는 나에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주는 이정표이다. 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리 보였다.
나를 화나게 하던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아마 어린 시절 이런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을까? 하며 그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이 분노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그 이면의 무의식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내 안의 결핍, 욕망, 여러 감정들에 대해 분석하고 글로 녹여내려 애쓰고 있다.
드라마를 쓰고자 노력하면서 나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다. 그리하여 드라마를 쓰는 것이 고통스러운 동시에 큰 기쁨이다. 나에게 가는 길이 세상으로 가는 길이고 세상으로 가는 길이 나에게로 가는 길이다. 나는 더 이상 사람을 만나면 소속을 말하지 않는다. 이제 ‘작가 지망생 000입니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