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회사 동료 부친상이 있어서 대구까지 갔다 왔다.
대구 체류시간은 30분도 되지 않았다.
동료가 식사하고 가라고 했지만 기차 시간 때문에 얼굴만 보고 왔다.
장례식 갈 때마다 느끼지만 가서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
나의 가족의 죽음은 경험한 것은 초등학교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처음이었다.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담은 나의 첫 조카가 8살 때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
큰 상실감과 가까운 이의 죽음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가끔 그때 생각에 운다.
그 상처는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갈 것 같다.
의미 없지만 조카가 살아있다면 몇 살일까? 세어본다.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그려본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10년 전쯤에 돌아가셨다.
내가 아들인 줄 알아서 지금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호적에 올리셨었다.
난 할아버지한테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손녀도 얼마든지 괜찮다고 말이다.
딱 한 번 칭찬받은 적 있는데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 일하러 가시고
집안일을 해 놓으니 웃으시면서 칭찬하였었다.
내가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아빠가 할아버지 앞에서
내 자랑을 할 때마다 할아버지가 나를 칭찬하길 바랐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러지 않았다.
한 번도 나를 다정스레 봐주지 않았다.
가끔 내가 여자여서 그렇게 싫으세요?라고 묻고 싶었다.
죽은 뒤에 받는 제삿밥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지금은 625참전용사들이 묻히는 호국원에 계신데 지금 생각하니 할아버지의 삶도 힘들었을 것 같다.
나는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생각한다.
죽는다는 것은 뭘까?
난 80살 내 생일에 안락사로 죽을 생각이다.
80살 내 생일 날짜를 항상 본다.
그리고 역으로 환산하여 남은 시간을 계산한다.
물론 사고사나 병사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
법적에 접촉되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하고 살 생각이다.
난 아직 살아있다.
내 심장은 뛰고 있고 피는 흐른다.
열정이 있고 아직 지치지 않는 체력이 있다.
난 나만의 역사를 지금도 쓰고 있다.
죽는 순간 후회가 없기를…
편안하기를…
오직 나를 위해서만 살겠다.
#장례식장#죽음#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