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결핍

by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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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내가 초등학생이 되자 엄마는 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나에게 말도 하지 않고 다 버렸다.

초등학교에 가면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말고 공부하라는 의미였다.

난 내 인형들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보내야 했다.

매일 조몰락거리면 놀던 아이들이었는데 말이다.

아빠 책상 밑에 나의 자그마한 공간을 만들고 거기서 혼자서 놀곤 했다.

내가 모은 장난감과 인형들로 나만의 작은 세계가 있었다.

나에게 말도 없이 다 버린 엄마가 너무 야속하고 그 애(?)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엄마 눈에는 쓰레기였는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것들이었다.

딸이 4명이다 보니 엄마는 매일 머리 손질하는 것이 귀찮았던 모양이었다.

한 번은 우리 모두를 짧은 커트머리로 잘라 버렸다.

난 정말 그 머리가 싫었다.

긴 생머리로 오늘은 반묶음을 했다가 오늘은 머리를 풀었다가 오늘은 땋았다가 하는 재미가 있었다.

짧은 머리를 한 나는 그냥 머스마(남자아이) 같았다.

같은 반에 고동 머리라고 만화 캔디캔디에 나오는 이라이저 머리를 한 애가 있었는데 너무 그 머리가 하고 싶었다.

나도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에 애나벨 구두를 신고 이라이저 머리를 하고 싶었다.

언니들이 물려 준 옷에 짧은 머리를 한 그때 사진을 보면 ‘나 진짜 싫어’ 이러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돈 벌고 제일 많이 산 것이 옷인데 그때 한인 것 같다.

그때는 맨날 나 돈 벌면 다 살 거야 모 이러면서 그 시절을 버텼다.

돈을 벌지만 내가 원하는 데로 돈을 쓰지는 못하고 산다.

그래도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직장도 있고 아직 건강하고 아직 나 좋다는 남자들도 있고 하니 나 성공했나?

아무리 비싼 것을 사도 어릴 적 결핍은 해소되지 않는 것 같다.

그때만큼 좋지는 않다.

물론 좋고 행복도 하지만 행복의 크기를 비교하자면 그렇다.

여전히 어릴 시절의 나는 짧은 커트머리에 언니들이 물러준 옷을 입고 남들을 부러워하면서 서 있다.

아무리 내가 돈을 벌고 옷을 사도 그것은 변함없을 것 같다.

#어린시절#상처#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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