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안정의 행복

by 윤슬

"난 여기에 싸인 못해줘. 이 계약 파기야! 계약금 돌려 줄테니 없던 일로 해!"


막 전세계약서에 싸인 하려던 순간이었다. 나는 맘에 드는 집을 발견하고 계약하기 위해 전세자금대출을 받으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알고 집주인 할아버지는 계약서에 싸인 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공인중개사까지 나서서 할아버지를 설득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정말 고집 센 할아버지였다.


“전세금 다 있는 세입자 얻을 거야. 이런 문서에 싸인 안 해도 되는...”


그때 돈 없는 서러움을 뼈져리게 느꼈다. 계약은 파기되었다. 다시 집 구하러 다닐 힘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슬펐다. 집주인에게 아무러 해가 되지 않는데 주인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퇴짜를 놓는 것이 집 가진 위세인가 보다 했다. 연일 전세금이 오를 때였다. 그렇게 비싼 집을 대출 없이 들어갈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러는지... 계약금을 돌려받고 몸과 영혼이 너덜너덜해졌다. 지금 사는 집은 만기가 다가오는데 나는 어디로 가야 되나? 막막했다.


그간 참 많은 집을 전전하면서 살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도 와서 나의 독립생활은 시작되었다. 친구네 친척집에서 부터 고시원, 반지하방, 원룸, 투룸 등 등본을 떼어보면 그간 거쳐 간 많은 집을 알 수 있다. 10군데가 넘는다. 각 집마다 나의 소중한 추억이 있고 내 청춘이 있고 나의 역사가 있다. 이 집과도 이제 안녕을 고해야 한다. 나의 가구들은 숱한 이사로 성한 곳이 없다. 부엌살림 중 일부는 그전에 이사하면서 아직도 풀지 못한 것도 있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한숨만 났다.


그래 이번 기회에 집을 사자! 전세자금대출을 받으나 아파트담보대출을 받으나 대출 받는 건 마찬가지이지 않는가? 이렇게 자주 이사 다닐 필요도 없이 그냥 집을 사는 거다. 더 이상 집으로 스트레스 받기 싫다. 당장 은행으로 갔다. 내가 대출자격이 되는지 그리고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은행측은 먼저 집이 정해져야 정확한 금액이 나온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집을 구하러 다녔다. 집을 산다고 생각하니 전세나 월세 구하는 것 보다 훨씬 신중하고 까다로와졌다. 향후 집이 오를지 유무, 대중교통과의 근접성, 근처 편의시설 등등 어느 하나 놓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오랜 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한강! 그렇다. 난 한강이 바라보이는 집이 내 로망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한강을 보고 싶었다. 시야가 확 트인 집을 원했다. 그간 집들은 창문을 열면 그냥 벽이거나 다른 집 창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 순위 원칙을 한강이 보이는 집으로 하고 다른 조건을 좁혀나갔다. 공인중개사 분이 까다로운 나의 요구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셨다. 그러다 정말 나의 조건과 맞아떨어지는 집을 발견했다. 한 번 더 본 후에 그래도 맘에 들어서 그 집으로 결정했다.


집주인에게 가계약금을 넣고 계약하기로 했다. 은행에 집주소를 알려주니 대출금액이 나왔다. 다행히 내가 가진 돈과 합쳐서 그 집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계약서를 쓰기로 했는데 집주인이 못나오고 부인이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 집을 사는 거라 이것저것 열심히 알아봤는데 그 당시 부동산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였다. 연일 미디어에도 나올 정도였는데 가짜 집주인 행세로 부동산 계약을 하는 사기를 쳤다. 나는 집주인 본인이 직접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진짜 부인인지도 나는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그렇게 말한 것인데 그게 상대방은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나를 뭘로 보고 그런 말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계약을 파기하자는 것이였다. 더불어 가계약금 500만원도 주지 않겠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언성이 오가고 중개업자의 중재로 일단 계약하러 만나기로 했다. 난 집주인이 안 오면 가계약금 돌려받고 파기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집은 마음에 들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여자 혼자 가면 얏잡아 볼까봐 회사부장님이랑 같이 갔다. 부동산중개소에 들어서자 바쁜다던 집주인이 와 있었다. 부인은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잠시 뒤 나와 그 부인과 설전이 있었으나 간신히 마무리가 되었다. 마침내 나머지 계약금을 입금하고 계약이 체결되었다.


나머지는 일사철리로 처리가 되었다. 은행을 통해 나머지 잔금이 치뤄졌고 리모델링 업체를 구해서 집을 수리했다. 그리고 대망의 이사 하던 날! 처음으로 내 집으로 이사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서울 올라와서 고시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제 서야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까지 온 것이다.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나 자신이 너무 대견스러웠다. 얼마 후 법무사로부터 등기권리증을 받았다. 나도 이제 집주인이다. 더 이상 만기마다 집을 알아보지 않아도 된다. 주거안정의 행복을 이렇게 이룰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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