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를 직업으로 한다는 것은

[책 리뷰]

by 윤슬

무라카미 하루키


그 이름만으로 그만의 독특한 문체와 작품 영역이 있는 사람이다.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난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는 바는 거의 없다. 사진으로부터 상상한 이미지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1Q84’의 광팬이다. 그전에 ‘상실의 시대’는 대학교 때 읽었는데 너무 야하고 난해했다. 그러나 그 특유의 독특하고 섬세한 문장력은 기억이 난다.


이 책은 어떻게 무라카미 하루키 본인이 소설가가 되었고 어떤 소설가인지 그리고 소설가가 되려면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야기는 하는 바에 어떤 큰 비법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독서를 많이 하고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체력을 비축하라는 이런 평범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방식이 절대적임은 아님은 강조했고 운이 따랐다는 겸손함도 거들었다.


그 정도 유명세이면 잘난 척(?)을 할 만도 한데 그런 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일정하게 겸손했고 중도를 걷는다고 해야 하나 일본인 특유의 겸손함이 묻어났지만 조심스럽게 할 말은 다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가로서의 삶은 매우 절제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아가는 수도승 같았다. 달리기를 매일 한 시간씩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정해진 원고지량을 채워서 글을 쓰고 이런 지루하고 단순 반복적인 일을 끊임없이 하는 작업이었다.


그가 오랫동안 소설가로 남기 위해서 이런 한 과정은 필수라고 했다. 대부분 소설가가 몇 년 안에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꾸준함, 진득함, 끈기라고 말해 될 것 같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해서 말했다. 에세이를 읽고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쉽게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않을 사람 같았다. 그의 문체를 보건대 그러하다는 것이다. 글을 그 사람을 나타내지 않던가?


자신을 좀처럼 잘 드러내기 않지만 이번 에세이에서는 많은 부분을 드러냈다. 그러나 궁금한 자신의 결혼 이야기 등 지나치게 개인적인 부분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부분을 안다고 해서 그의 소설을 읽는데 도움이 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팬으로서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부분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싫어하는 듯하다. 그게 바로 하루키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소설가로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으면서 ‘어쩜 이 사람은 내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던 감정들을 정확하게 표현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수십 권의 책을 읽은 그의 전적(?)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맨 처음 무언가 큰 비법서처럼 집어 들었으나 평범한 결론에 약간은 힘이 빠졌지만 그것 역시 나의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다.


에세이에서도 그의 이러한 평범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럴 리가 없다는 반응들이라고. 이때 나는 발레리라 강수진 씨 인터뷰가 떠오른다. 세계적인 발레리라가 된 비결을 묻는 말에 무조건 노력이라고 말해도 다르게 인터뷰가 나가거나 했단다. 사람들은 무언가 특별하고 독특한 것을 원한다. 한마디로 자극적인 것 말이다. 그게 돈이 되다 보니 상업적 미디어는 그런 것으로 포장하고 소비하려 하는 것이다.


그런 세태에 무라카미 하루키는 동떨어진 사람이다. 미디어가 좋아할 만한 구석이 없다. 오히려 심심하다. 평범하다고 해야 되나? 나도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비법을 전수받을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읽었다. 그러나 읽으면서 정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일상의 평범함이 가장 큰 비범함이라는 사실 말이다. 나도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책을 많이 읽고 정해진 시간에 글을 꾸준히 써야겠다. 더불어 운동도 말이다.


‘글쓰기에 왕도란 없다’라는 것을 느낀다. 그 꾸준함과 끈기를 이겨내는 자만이 직업인으로서 소설가의 참맛을 알게 된다. 나의 글쓰기의 끝이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다. 이제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대가의 서재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자극과 용기를 얻는다. 그나저나 무라카미 하루키 글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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