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시절은 대체적으로 우울했다. IMF이후 학교 분위기가 완전히 변했다. 그전에 약간 노는(?) 분위기에서 공부하는 분위기로 말이다. 대학의 낭만이 사라졌다고나 할까? 그러던 중 난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휴학을 했지만 나는 휴학은 하지 않기로 했다. 문제를 회피하는 듯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진로를 다양하게 모색하였는데 그래서 이것저것 하는 것이 많았다. 일반 대기업 입사 준비부터 공무원 시험까지 그야말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많이 불안했다. 선배들이 취업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러면 어쩌나 하고 불안감에 그랬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런 것들이 사는데 도움은 많이 되었지만 너무 일을 벌이고 있긴 했다.
4학년. 벌써 졸업반이 되었다. 3학년 겨울 계절학기까지 열심히 들어서 4학년 때는 수업이 많이 널널 했다. 본격적인 취업준비에 들어갔다. 그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것이 대기업이었는데 나는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다. 같이 시험 본 대부분의 과 학생들은 합격을 했다.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나름대로 성적도 괜찮았고 열심히 준비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충격이 가시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부모님 뵐 면목이 없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취업 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언제나 면접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취업 턱을 사겠다는 사람들 틈에서 점점 나는 초라해져 갔다. 사람들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점점 졸업은 다가오는데 이러다가 백수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극도로 예민하고 우울했다. 뭐가 잘 못 된 것일까를 되뇌며 매일매일 기업체 문을 두드렀다.
졸업 전에 간신히 조그마한 회사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 가고 싶은 회사는 아니었지만 그동안 부모님에 손 벌인 것도 많아서 회사를 가지 않겠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정확히 새해 첫날 다음날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내가 회사에 취업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만큼 내 자존심에 상처가 컸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기억한다. 아무 연고가 없는 서울로 떠나면서 큰 가방에 옷을 챙기고 엄마가 주신 단돈 30만 원을 들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시렸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여기서 무너지지 않겠다고 다시 일어서겠다고 결심했다. 서울에 친척이 없어 친구 이모네에서 신세를 졌다. 회사를 출퇴근하면서 난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한 직장을 만들기 위해 다시 재취업 준비를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취업준비를 한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면접을 보기 위해 회사를 비워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혼나기도 혼나면서 면접을 보러 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내가 지원한 줄 까맣게 잊고 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러 오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 회사는 외국계 회사였는데 연봉과 복리후생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봤고 다행히 합격했다. 정말 기뻤다.
퇴직처리는 일사처리를 진행되었고 나는 원하는 회사에 합격했다는 사실에 무척 들떴다. 그제야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사실 나는 졸업식도 가지 않았다. 다들 좋은 회사에 취직했는데 나만 별 볼일 없는 회사에 취업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독히도 자존심이 세었다. 그냥 웃으면서 ‘조그마한 회사에 취업했어’라고 말하면 되었을 것을 말이다. 인생에 중요한 순간을 그렇게 놓쳐버리다니. 그래서 대학 졸업 때 찍은 사진이 없다. 참 아쉬운 일이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고 난 몇 번 더 이직 후 현 직장에 다니고 있다. 이제는 회사에 대한 어떤 미련이나 불평은 없다. 이미 이직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기도 하다. 당시에는 힘들고 암울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도 나는 찬란한 청춘을 보내고 있었다. 돈도 없고 가진 것 없던 시절이지만 젊음이 있었기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치열했고 용감하고 열심히 살았던 내 대학시절 청춘이 감히 아름다웠다고 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