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1-20210513
모든 것을 제쳐두고 우리가 가장 감탄했던 것은 완벽한 날씨였다.
몇 일 전까지만해도 황사로 앞이 보이지도 않았는데 출발하는 날에는 미세먼지 한 점 없이 맑은 하늘만 보였다. 나는 운전한다고 정신이 없었는데 조수석에 앉은 친구가 찍은 사진들을 보니 그 날에 이 친구가 얼마나 설레였는지 그 마음이 보인다.
창 밖을 찍은 사진만 봐도 다시 마음이 두근두근. 하긴 3일을 휴가낸 직장인의 휴가 첫 날 마음이 어땠겠어.
차를 사기 전까지는 서울 위에 포천이라는 도시가 있는지도 몰랐다. 서울 북쪽으로 아는 건 예전에 영화제 일을 할 때 가봤던 파주, 일산 정도. 차를 사고 본격적으로 운전을 시작한지 이제 일 년 쯤 되었는데, 생활의 반경이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넓어졌다. 포천에는 올해만 벌써 네 번째다.
멍우리협곡캠핑장은 노지 느낌이 좋아서 골랐다. 평일이라 자리를 넓게 쓸 수 있어서 좋았고 우리는 커다란 소나무 세 그루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사진은 멋있는데, 타프 없이 소나무 아래에서 캠핑을 한다는 건 송충이와 송진가루와 싸워야 한다는 걸 이때는 몰랐다.
첫 날 저녁. 생일 선물로 동거인에게 받은 유니프레임 화로를 처음으로 쓰는 날이었다. 숯에 불도 잘 붙고 사이즈도 작아서 테이블에 올려놓고 얘기를 나누며 구워먹기 딱 좋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고기 굽고 맥주 한 잔 하고 불 보면서 멍때리고 하다보면 시간 참 잘 간다.
연락이야 종종 계속 하지만 얼굴본지가 오래되어서 그런가. 할 말이 참 많았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것을 온라인으로 대신하는데 친구들과 만나서 하는 대화는 카카오톡이나 영상 통화로 완벽하게 대체되지는 않는 것 같다.
얘기는 텐트 안에 들어가서도 계속 한다. 각자 핸드폰을 보다가도 '아 근데 그거 말이야', '몇 달 전에 말이야', '근데 그건 왜 그런건데?' 하고싶은 말도 많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
아침 텐트 안 풍경 몇 가지.
둘째날 아침은 간단하게 친구가 싸온 누룽지를 끓여먹고 산책을 하러 나섰다. 캠핑을 오면 맛있는거 먹는 것도 좋은데, 이렇게 집에서 대충 싸온 음식을 나눠 먹는 것도 나름 재미라고 느껴진다.
누룽지에 찬물 넣어 끓이고, 심심하니까 육개장 사발면 하나 놓고 먹었다.
캠핑장부터 비둘기낭 폭포, 흔들다리까지 산책로가 연결되어 있다. 산책로라고 하기에는 오르막 내리막 경사가 심하고 길이도 길어서 음... 트래킹 코스라고 하는게 더 맞을 것 같다. 이 날 만 육천보쯤 걸었다.
그리고 너어무 더웠다. 흔들다리에 가면 커피나 주전부리들을 파는 컨테이너들이 몇 개 있는데 거기에서 당하고 수분보충을 안했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아메리카노 가격은 삼천원, 빙수는 오천원. 포천에서 나름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니까 바가지 장사를 할 법도 한데 가격도 다들 비슷비슷하고 저렴했다.
친구는 무한리필이 된다는 슬러시를 생명수처럼 먹고,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다음에 가게되면 얼음물들고 모자쓰고 출발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돌아왔을 때는 거의 탈진. 친구는 야침에서 단잠 잤다.
빨리 샤워를 하고 와서, 해 떠 있을 때 저녁을 먹기 위해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캠핑장에 가면 샤워를 하러 가는 것도 일이요, 다 먹고 설거지를 하는 것도 일이요, 밥을 차리는 것도 참 일이다. 우리가 잡은 자리는 관리동과 거리가 멀어서 더 그랬다. 근데 뭐, 불편하려고 가는거지.
캠핑이 처음이라는 친구가 좀 걱정됐었는데, 2박 3일 중 첫 2박 2일은 내내 싱글벙글이셨다. 마지막 날은 내내 휴가가 끝났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직장인 컨셉이셔서 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둘째날 저녁도 같은 메뉴. 같은 세팅. 해가 떠있을 때 먹어서 적당히 익힌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불멍 하다보니 금방 어두워진다. 산의 어두움은 금방 찾아오고, 우리는 야외에서 쓸만한 밝은 랜턴이 없다. 어두워지면 불 좀 보다가 텐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른 캠핑장은 늦게까지 조명을 켜놓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는 캠핑장에서 켜는 조명이 많지 않아 밤이 되면 그냥 깜깜하다. 처음에는 좀 불편한가 싶었는데, 나중에는 좋았다. 어둡고, 밤에 우는 새 소리가 나고, 협곡에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서 내가 정말 자연의 한가운데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고 해야할까.
자던 중간에 깨서 화장실 가고 싶을 때에는 좀 무섭긴 하더라. '안 마렵다...' 주문 외면서 다시 잤다.
마지막날 아침은 진수성찬. 된장찌개를 끓이고 스팸을 구웠다. 아이고 뭐 아침을 챙겨먹나 하면서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프라이팬은 엄마가 준 골동품처럼 보이는 코펠 안에 있는걸 꺼내서 써봤다. 코펠 가방에 '대전백화점 8주년 기념'이라고 써있던데 도대체 몇 년 전 제품인지 모르겠다. 오래된 물건이지만 사용한 적은 없는 새거라서 코팅은 아주 짱짱했다.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워서 새소리 녹음도 해봤다. 여기 새가 정말정말 많다.
떠나려니 아쉽다.
아이고 아쉬워.
아이고오 아쉬워!
또 와야지.
다음번에 오면 저 자리가 좋겠다 눈에 찜해두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