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7일 여행 중 기록
! 이 글은 2019년 인도, 미얀마 여행을 하면서 썼던 기록을 브런치로 옮긴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무주에 있는 외가가 아니라 인도의 동북부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의 지로(Ziro)라는 도시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어서 어딘에가 올릴 때마다 동생들이 달려와서 '누나 무주야?' 물었어요.
'아니 무주에 가면 되겠구만 왜 그걸 보러 인도까지 가는거야?'
2019년 1월 27일
오마이갓 생리한다.
생리증후군이 매우 심한편이라 어지간하면 인도여행 중 생리는 피하고 싶었다. 피임약을 먹었는데 시간대가 바뀌면 맞춰먹기 쉽지 않으니까 인도에 도착해서 시작했다. 솔직히 엄청 게으르게 먹었다. 시간도 못 맞추고 하루 건너뛰고... 한국에 있었어도 제대로 먹을 자신이 없는데 여행중이니 스케줄이 널뛰고 암튼 변명을 하자면 쉽지 않았다.
생리증후군이 심하지 않더라도 여행은 이동을 많이 해야하고, 생리대를 자주 바꿀 화장실을 찾기 어렵고, 이외에도 많은 이유 때문에 많이들 피임약을 먹어 생리를 미룬다. 특히 인도여행에서 위생적인 화장실을 찾기가 어렵고, 나는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었다. 게다가 여기는 고산이라(원래 가려던 네팔도 고산이고) 생리로 오는 피로까지 받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호르몬이라는 녀석은 날 봐주지않았고 한달가량 정성껏 짓던 집을 부시기 시작했다. (미친 이걸 굳이 한달 주기로 짓고 부실 필요가 있냐 진짜 나한테 너무한거 아니냐 아무튼)
덕분에(이렇게 생각하는건 자궁에게 너무 관대한 처사인게 아닌지 다시 한 번 짜증이 치민다), 여행 중 생리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다. 세상에 많은 종류의 여행이 있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여행은 배낭을 매고 오랜 기간을 딱히 정해진 목적의식 없이 돌아다니는 여행이다. 내가 쉬고싶을 때 언제든 쉴 수 있고 하루종일 호텔에 누워있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이런 여행에서 굳이 생리를 미루는건 생리를 하는 것보다 덜 자연스러운게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을 하게됐다. 오히려 다양한 상황에서 생리를 하고, 대처하는 법을 공부하고, 어느 환경에 놓여지든 자연스럽게 이를 바라볼수 있도록 하는게 나에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이건 아프지 않을때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걸 너무 잘 안다. 아무튼 지금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다음 날부터 생리통이 시작되어서 자연스러움이고 나발이고 시발 다 때려쳐 상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로에 머무는 내내 생리를 했습니다. 멀리 시간을 지나고보니 같이 여행한 안드레아 그리고 친절했던 홈스테이의 호스트분들 덕분에 그 시기를 잘 지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고용량의 이부프로펜을 먹고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텅 빈 몸으로 침대에 누워있는데 자꾸 밥 먹으라고 저를 흔들어 깨우던 남자 주인에게는 정말 아주 짧게 짜증을 냈던 기억도 납니다. 'No... I said I can't...... please leave me alone...' 애원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쪼그려서 볼일을 보는 화장실에서 어떻게 생리대를 갈아야 하는지 몰랐어요. 엉거주춤 서서 생리대를 바꿨습니다. 화장실 벽에 기대어 여행이고 뭐고 누가 날 거대한 손으로 집어서 한국 집에 데려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강렬한 호르몬의 습격이 저를 미얀마 국경까지 가게 한걸지도 모르겠어요. 인도 동북부 여행을 끝내고 인도 서부로 건너가 안드레아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도 있었는데요. 인도 서부의 전통 혼례를 보지 못한것이 아쉽지만, 그것을 내어주고 미얀마 여행을 얻었으니 뭐가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