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차라리 모른 척해줄래(1)

가족의 장애 이해

by 윤소영

상우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는 길.


"엇 저기 상우 형이다."


상우보다 먼저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을 나온 꼬맹이가 상윤이를 가리키며 반갑다는 듯 말했다.


'상우'라는 이름에 반사적으로 반응한 나는 어떤 귀여운 아이가 상윤이를 알아보나 싶어 쳐다보았다.

여자 친구들은 극구 싫다고 고개를 내젓던 상우가,

어느 날 웬일로 친한 여자 친구가 생겼다기에 관심을 두었던 아이였다.


상우랑 친하다는 이유로

'너로구나! 귀여워!'

나 혼자 친밀감을 느끼며 절로 미소 띤 얼굴로 아이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이는 유치원에서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깔깔 웃으며 즐겁고 씩씩하게 전해주고 있었다.


"엄마 저 사람이 상우 형이야. 상우형은 장애인이래. 말을 못 한대. 집에서도 끼긱끼긱 이렇게 말을 한대."


그 아이의 엄마는 당황한 얼굴로 아이에게 작게 말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아직 일곱 살인 아이는 영문을 모르고 눈치도 없이 더 큰 목소리로 반복하며 말했다.


내 주변을 따스하게 품어주던 공기가 한순간에 식어 차가운 공기로 변했다.


'그럴 수 있지...' 한 발짝

'고작 일곱 살이야. 일곱 살이 뭘 알겠어?' 한 발짝

'악의를 갖고 한 말은 아니야.' 한 발짝

'그래도 웃으면서 할 얘긴 아니잖아.' 한 발짝

'저 엄마는 왜 그냥 가만히 있어?' 한 발짝

'누구한테 들었지?' 한 발짝

'누군 누구겠어. 김상우겠지.' 한 발짝


상우 유치원까지 한 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나쁜 생각이 하나씩 꼬리 잡고 따라왔다.

그 꼬리는 어느새 아주 길어져 내 이성을 교란시키고 침착함에 타격을 줘 헤롱 거리게 했다.


유치원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땐

여름의 무더운 날씨에도 내 주변 공기는 차갑고,

반면 몸은 뜨거워 등에서 갑자기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피들이 이상 기류에 길을 잃고 헤매다 얼굴이라는 막다른 길에서 허둥지둥 헤매는 듯

얼굴이 심장이 된 것처럼 혈관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울그락붉으락 했다.


가슴속에서는 묵직한 불쾌한 기운이 아무리 눌러보아도 꿀렁꿀렁 위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욱이다.

욱이 터지려고 하고 있다.

나랑 함께 지내온 이 욱이란 놈은 마음이 평온할 때는 있는 줄도 모르다가,

일단 나올 타이밍이 되면 말릴 수 없는 데다 절대 그냥 혼자 사라지는 법이 없다.


누군가 희생될 욱받이가 필요하다.

욱이란 놈이 참으로 교묘한 게 뭐냐면 늘 나보다 약한 사람을 욱받이로 고른다는 것.

오늘의 욱받이는 상우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무거나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