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거북이 엄마가 되었다 1
아무거나 될 거야
장래희망
by
윤소영
Sep 14. 2022
"상우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그냥 생각 없이,
딱히 의미 없이,
크게 기대감도 없이,
습관처럼 던지는
구닥다리 못된 질문이었다.
"아무거나 될 거야. 아무거나!'
상우도 역시 귀찮다는 듯
툭 내뱉은 대답이었다.
잠시 멍해졌다.
항상 무언가 될 거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던 상우였기에
대충 성의 없게 대답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데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이 대답이 매우 신선했기 때문에
질문자로서 어떻게 반응해줘야 할지 조금 당황했다.
그러나 이내 나는,
대답의 성의 없음이 아니라,
신선함에 초점을 맞춰 반응해주기로 했다.
어쩌면 "뭐가 되고 싶어?"라고 던지는 질문 자체가
7살 상우에게 진지하게 묻는 게 아닌,
현재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고 있는 38살 경력단절녀인
나 자신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휴... 난 뭐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은데 뭘 하면 좋을까?
넌 어때? 넌 뭐가 되고 싶어?"
같은...
그래서 상우의 '아무거나 될 거야!'라는 말이 신선하고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마치 진짜 내게 해주는 위로 같은 대답이어서.
다행이다!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래!
지금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아무거나'라도 되어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난 뭐라도 하고 있는 사람이니깐.
"아무거나 될 수 있다고? 그거 진짜 멋지다!"
이번에는 상우가 예상치 못한 엄마의 반응에 당황했다.
그리고 그날 밤 자기 전에 넌지시 내게 와 속삭였다.
"엄마, 나는 게임 개발자가 될 거야."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없으니깐.
keyword
육아에세이
질문
대답
12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멤버쉽
윤소영
자폐성 장애 아들 하나와 비장애인 아들 하나를 둔 엄마로, 매일 전쟁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에도 '나'를 찾는 여정에 진지한 주부춘기, 경력단절춘기, 사십일춘기 에세이
구독자
75
구독
월간 멤버십 가입
월간 멤버십 가입
매거진의 이전글
원 플러스 원으로 데려왔지
차라리 모른 척해줄래(1)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