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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Sep 27. 2022

슬픈 기억은 지우는 게 좋을까

도서관에 가보면 아들 육아서가 참 많다.

여성인 엄마와 남성인 아들의 '태생적 다름'으로 인한 갈등을

'이해'와 '노력'으로 극복해보고자 하는 '엄마'들을 위한 책들이다.


'왜 엄마만 이해하고 노력해야 되는데!' 

생각되어 억울할 때가 많지만,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고 똥이 마려운 자가 화장실을 찾는 법이니깐.


변화와 상생을 통해 앞으로 잘 지내보고 싶은 엄마와 

현재의 갈등만 덮어놓고 보자는 아들,

어느 쪽이 더 답답한 쪽일까


엄마의 말이 들리면서도 들은 체 만 체 하는 아들 김상우에

자존심이 상한 나는 '엄마 파업'을 선언하고,


엄마의 존재는 '공기' 같아서 있을 때는 잘 모르다가, 

갑자기 '없다.'라고 생각하니 세상이 무너질 같은 슬픔을 느낀 김상우는 

 "엄마 이젠 말 바로바로 잘 들을게요." 

눈물을 펑펑 쏟으며 후회와 뉘우침으로 반성의 밤을 보냈다.


"마음이 너무 슬펐어."

엄마와 화해 후에 꼭 껴안고 잠자리에 들던 상우는 자기 전 슬펐다고 이야기했다.

그 얘기를 듣는 나도 슬펐다.


아이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그렇다고 해도 잠만 잤을 뿐인데 다 잊어버리는 건 너무 빠르지 않나.

마치 수면이 아니라 최면에 걸린 듯 이 아이는 어제의 슬픈 기억을 지워버렸다.


날이 밝고 나니 또다시 나는 시험장이다.

인내심 테스트.


"어제 마음이 너무 슬프다고 했던 아이 어디 갔어? 상우 그새 잊어버렸어?"

기가 차서 오히려 웃음이 나오는 상황.


"슬픈 기억은 지우는 게 좋은 거 아니에요?"


파워 당당한 김상우.

아이는 빨리 큰다더니

이렇게 하룻밤 새 크는 건가.


"슬픈 마음을 지우는 건 좋아. 그렇지만 왜 슬펐는지는 기억해야지. 슬픈 이유까지 지워버리니깐 맨날 슬픈 거야."


우리들의 진지한 대화는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밤,

도로에 가끔 한대 씩 지나가는 차 소리가 바람 소리처럼 느껴지고 

가로등 불빛이 달빛처럼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밤에

의미 없이 넓은 방, 큰 침대에서 둘이 딱 붙어 부둥켜안은 채 이루어진다.


"상우야,

슬픔이란 건 가슴속에 들어가 슬픈 마음이 되고

머릿속에 들어가 슬픈 기억이 된대.


슬픈 마음은 모래알 같아. 

한꺼번에 모래알이 후두둑 떨어져서 모래로 만든 산처럼 쌓이게 되지.


휘이이 바람이 불면서 조금씩 날아가고,

쏴아아 파도가 치면서 조금씩 가져가고,

알게 모르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만큼 높게 쌓여있던 모래가 저절로 다 사라져.

쌓여있던 슬픈 마음도 그렇게 다 사라지게 돼.


슬픔 마음이 다 사라지고 나면 

우리는 머릿속에 남겨둔 슬픈 기억을 꺼내도 '그랬었지.' 하고 말아.

슬픔이 다 사라졌기 때문에 그때를 다시 생각해도 더 이상 슬프지 않아.


어떨 때는 슬픈 모래가 쌓여있던 곳이 깨끗해지고, 예쁜 꽃도 피어서 

오히려 그 기억을 꺼냈을 때 기분이 좋아지기도 해.


그런데 슬픈 기억을 통째로 지워버리잖아?

그럼 '왜 슬펐지?' 슬펐던 이유조차 잊어버리게 돼. 


슬펐던 이유를 잊어버리면

나를 슬프게 했던 행동을 계속 반복하게 되고 또 계속 슬프게 돼.

계속 마음에 슬픈 모래산이 쌓여.

아직 지난번 모래산이 다 사라지지 않았는데 또 쌓여.


아무리 바람이 강하게 불고, 파도가 쳐도 

상우 마음에는 슬픈 모래산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게 되는 거야.


그러니깐 상우야 

슬픈 마음은 잊어버려도

슬펐던 이유는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자.

그래야 더 이상 마음에 슬픔이 쌓이지 않을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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