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조력자가 생기다
인생에서 가장 떨리던 순간이 언제였더라...
초등학교 때 핸드볼 시합에서 동점으로 시합이 끝이나 승부던지기로 승패를 결정짓던 때 사이드 수비수였던 내 순서까지는 절대 오지 않을 순간이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설마 했던 그 순간이 와버렸던 그때? 아니면 중학교 때 줄넘기 2단 뛰기를 평소에는 20개 넘게 거뜬히 하던 내가 시험 때 1개 넘자마자 오줌 나올 거 같아 2개 못 넘고 발에 걸렸던 그때?
혹은 수능 외국어영역 시간에 고 1 때 치열하게 싸웠던 수학 선생님이 감독관으로 들어와 내 책상 옆에 서서 내가 푸는 문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던 그때인가? 휴... 이날 이후 영어에 트라우마가 생겨버렸지.
운전면허 기능시험 보던 날 인가? 상윤이를 출산하던 때는... 너무도 평온했지 참.
심장이 고장 난 것 같이 쥐가 난 것처럼 막 아린 듯, 진동이 울리는 듯. 또 평소보다 2배속으로 뛰는 심장소리가 너무나도 크게 내 귀에 들리는 그 느낌. 내 모든 모공, 심지어 두피의 모공까지 열려 머리가 축축해지는 그 느낌. 말이란 걸 하고 있는데 이 말이 사람 말인지 동물의 말인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그 느낌. 오줌이 마려운 듯 안 마려운 듯 화장실을 가기엔 안 마렵고, 안 가기엔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는 안절부절못한 상태.
그날은 청사어린이집 입소 추첨 날이었다.
맞벌이 부부에게 최고의 어린이집이라고 불리는 청사어린이집. 워낙 들어가기가 어려워 돌 전부터 일단 입소를 해놓고 졸업 때까지 다니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입소 순위를 따지자면 상윤이의 경우는 상우가 태어나기 전이여서 순위가 많이 밀려있던 상태였다. 만 6개월 이상만 입소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11월 생일인 상윤이를 0세 반에 미리 넣어두지도 못했다.
이미 재원생과 앞 순위가 어린이집 TO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 1세 반 TO는 딱 2자리 남아 있었다. 나는 타고난 똥손이므로 그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하늘이시여!! 제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세요. 앞으로는 말 잘 들을게요...
그리고 결과는 대기 1번이었다. 당첨된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상태. 그래도 똥손치고는 선방했다는 남편의 극찬을 받았고, 대기 8번, 10번, 13번을 뽑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는 것을 보아하니,
‘그래도 한 명은 빠지겠지...’
기대는 해볼 만한 결과였다.
그리고 2월의 어느 날, 상윤이는 입소 확정을 받게 되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직장 어린이집이 간절했던 이유는 단지 내 어린이집의 등 하원 시간 때문이었다. 맞벌이 가정이 거의 없었던 단지 내 어린이집의 특성상 보육시간이 오전 9시 반부터 이루어졌고, 오후 4시가 되면 대부분의 원아들이 하원을 했다. 오전 8시 반까지 출근을 해야 했던 나는 자고 있는 아이를 이불채로 돌돌 싸맨 채 어린이집 통합 교실에 맡겨야 했고, 돌아가며 교사가 바뀌는 통합반의 특성상 낯가림이 심했던 상윤이는 담임 선생님을 만날 때까지 몇 시간을 울고 있곤 했다.
차라리 상윤이가 자고 있는 채로 등원을 하면 마음은 불편하지만 출근 발걸음이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때때로 등원 길에 상윤이가 깨기라도 하면 어린이집에 도착해 선생님께 인계하는 순간부터 눈물의 이별이었다. 상윤이의 울음소리는 -지금도 그렇지만 - 건물 밖까지 쩌렁쩌렁 울려 퍼져, 나는 어린이집 밖에서 안절부절 걸음을 떼지 못하곤 했다.
나는 나름 지금껏 상윤이를 키우면서 미안해하거나 후회하지 않도록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 온 사람인데, 이때 상윤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것은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차라리 엄마랑은 떨어져 있어도 익숙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돈을 들여서라도 돌봄 선생님을 구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또 오전만 그런 게 아니라, 오후 4시 30분부터 하원할 때 까지도 통합보육이 이루어졌다. 해가 짧은 겨울이라 퇴근하고 상윤이를 데리러 가보면 불이 다 꺼져 캄캄한 어린이집. 유일하게 불빛이 새어 나오는 교실 한 칸에 선생님과 상윤이 혼자 남아있기 일쑤였다. 4시부터 다른 아이들의 하원을 한 명, 한 명 마지막까지 지켜보던 - 이제야 걸음마를 막 뗀 -13개월 아이는 벨소리가 들릴 때마다 ‘혹시 엄마인가’ 하고 현관을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내 맘이 오죽했을까...
혹여 할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해 퇴근 시간을 조금이라도 넘기기라도 하면 “어머님, 언제 오시나요?” 문자가 왔다. 나의 퇴근 시간은 즉, 선생님의 퇴근과 연결되어 있었다. 늦어진 선생님의 퇴근 앞에 나는 늘 죄인이었다. 특히 금요일엔... 혹시나 나의 늦은 퇴근 때문에 상윤이가 밉보일까 봐 마스크팩, 핸드크림, 휴족시간, 선생님 간식 등 일명 뇌물을 선생님께 상납하기 바빴다.
그에 반해 직장어린이집이라고 할 수 있는 청사어린이집은 맞벌이 천국인 곳이었으니, 9시 이전 등원에 18시 이후 하원이 국룰인 그런 곳이었다. 게다가 통합은 오전 8시 30분 이전 오후 6시 30분 이후에 이루어지니 한마디로 눈치 볼 것 없다는 거다.
이렇게 장황하게 어린이집을 옮기는 일을 늘어놓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영아기 우울증 아닐까?’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무표정했던 상윤이가 어린이집을 옮긴 이후 정말 많이 달라진 점 - 표정이 풍부해졌다든지, 사라졌던 옹알이가 많이 늘었다든지 등- 이 첫 번째 이유다.
그동안 나는 상윤이가 그저 예민한 아이인 줄, 늦게 말이 트이는 아이인 줄,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인 줄, 낯가림이 심한 아이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 상윤이의 성향이 그저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내게 상윤이가 ‘눈을 맞추지 않는 점’에 대해 ‘그냥 넘길 일이 아닌 일’ 임을 알려 준 것이 청사어린이집 만 1세 반 선생님이셨다. 처음으로 상윤이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는 조력자가 생겼다. 이게 바로 두 번째 이유이자 가장 큰 이유.
이때부터 상윤이는 너무 울고 낯을 가려서 밉보이는 아이가 아니라, 잘생기고 귀여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아이가 된다. 바로 두 번째 어린이집에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