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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Sep 19. 2021

그 무렵부터였던 거 같아

웃음을 잃어버린 아이

복직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임신 6개월 임산부는 자장가를 부르며 상윤이를 재우다가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까까진 아무렇지 않았는데...


자고 일어나면 현실이 된다.

상윤이는 어린이집에 다닌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적응을 하지 못했다.

나는 - 이제 막 돌 지난,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못 뗀 이 작고 어린 - 어린이집 부적응자를 아침 일찍 어린이집에 두고 출근을 해야 한다.

비록 지금까지는 적응하지 못했지만, 부디 오늘부터는 잘 적응해주는 기적을 바라본다.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길, 안 울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주기를...


스스로를 위로해 보았다.

다 괜찮다고, 아이는 걱정과 달리 잘 지낼 거고 막상 아침이 오면 생각보단 괜찮을 거라고...

깊게 잠들지 못하고 시간마다 깨서 아이 얼굴을 보고, 만지고, 볼에 입을 맞추고, 심장소리도 들어보고.

그렇게 아침이 찾아왔다.


자고 있는 아이를 이불채로 돌돌 말아 어린이집에 보낸 후의 출근길은 비도 오지 않는데 시야가 흐려 고생 좀 했다. 회사에서 한 시간에 한 번씩 커다란 듀얼 모니터를 바라본 채 손은 키보드를 두드리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훌쩍 소리를 내면 들킬까 봐, 손으로 얼굴을 자꾸 닦으면 들킬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 강한 엄마인 척하고 싶어서.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내 눈물의 텀도 한 시간이 두 시간, 두 시간이 세 시간으로 늘어났으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두고 갈 때의 불편한 마음도 점차 무뎌져 갔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건이 사라진 게 아닌데, 불편함에 익숙해진 것. 나는 그걸 '적응했다.'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땐 몰랐다.

착각.

'내가 적응했으니 너도 적응했겠지.' 하는 착각.


상윤이는 여전히 한 달 전과 같이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채 하원 하는데, 그걸 보는 내 맘이 한 달 전만큼은 아프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내 감정과 상윤이의 감정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슬프면 너도 슬프고, 내가 좋으면 너도 좋고, '내가 지금 좀 마음이 덜 아파. 그러니 너도 예전보단 좀 괜찮지?' 뭐 그런 거. 나 편하자고 하는 착각.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하루 종일 울어서 목이 부었고, 목이 부어서 열이 났고, 열이 나서 등원을 못하고, 나으면 또 어린이집에 가서 하루 종일 울고, 목이 붓고, 열이 나고, 등원 못하고의 악순환을 반복했다. 아이가 자주 아파 휴가가 없으니 이젠 아픈 아이를 두고 회사에 가야 되는데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열이 떨어지면 다 낫지 않은 채로 어린이집에 등원해야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윤이는 또 엄청 울고...


어느 날, 아이는 웃음을 잃어버렸다. 아프니깐, 아프니깐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오래갔다. 웃지 않는 상윤이.

표정이 없어진 상윤이.

개구쟁이 표정으로 웃던 상윤이가 웃지 않는다.


검색을 해봤더니 <유아 우울증>이라는 게 나왔다. 이 돌쟁이 아이가 우울증이라니, 원망을 해 보았다. 몇 개월 동안 아이를 적응시키지 못한 어린이집 탓도 해보고, 아이가 아플 때 쓸 수 있는 휴가를 만들어 주지 않은 정부 탓도 해보고, 육아휴직이 1년인 회사 탓도 해보고, 7개월 임산부가 맞벌이하며 육아까지 혼자 책임져야 하는 현실도 싫고,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고 말했던 모든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멀리 있고 바쁘셔서 올 수 없는 친정부모님과 건강이 안 좋으셔 모시기 어려운 시부모님, - 왕복 200km -장거리 출퇴근에 지쳐있는 남편까지... 알지만, 물론 사정을 머리로는 다 이해하지만, 나는 의지할 곳 없는 외톨이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탓하고, 원망하고, 싫어하고, 서운하다 생각해봐도 결국엔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았다. 힘들어하는 어린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두고 힘듦을 외면해 왔던 초보 엄마. 내 탓인 것만 같아서 나는 다시 상윤이를 웃게 만들어야만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침, 저녁으로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 뛰어놀았다. 상윤이는 웃지 않았지만, 나는 상윤이 앞에서 계속 웃었야만 했다.


천안으로 임신성 당뇨 재검사를 하러 간 날,

남편이 출근을 하게 되면서 상윤이를 산부인과에 내려주고 회사에 갔다.

검사가 끝난 후, 나는 상윤이를 업은 채 부랴부랴 뛰어 아슬아슬 KTX에 탑승했다.

기차에서 내린 뒤 역에서 상윤이랑 단팥빵을 나눠먹고, 날이 좋으니 천천히 걸어서 집에 가자고 했다.

걸어가는 길에 토스트 가게에 들러 토스트를 나눠 먹고, 또 가는 길에 놀이터에 들러 상윤이랑 나랑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 해 처음 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지던 날 그렇게 너와 나 단둘이 데이트를 했다.


그리고,

웃었다.

상윤이가 웃었다.

웃는 표정을 어떻게 짓는지 잊어버린 사람처럼

천천히 어색하게

그렇지만 할 수 있는 가장 밝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었다.


나도 웃었다.

눈물은 폭포처럼 하염없이 쏟아지는데,

얼굴은 웃고 있어야 했다.

상윤이가 보고 있으니까.






자폐 아이들의 특성 중 하나가 표정이 없다는 건데,

제가 만난 자폐 친구들 중에는 표정이 풍부한 친구도 많아요.

다행히 지금의 상윤이는 미소 천사입니다.


시간이 지나 상윤이가 자폐성 장애인이라는 걸 알기에 이젠 알아요.

상윤이가 어린이집에 오래 적응하지 못한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을...

당연히 제 탓도 아닙니다.

그냥 상윤이가 불안과 강박이 높아 적응이 오래 걸리는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땐 모두 몰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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