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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Oct 29. 2021

그저 엄마라서 예민한 걸까

상윤이의 변화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아이


"상윤아!"

"..."

"상윤아!"

얼마 전까진 잘 돌아보던 아이였다.


"상윤아!" 불러봐도 

책장 앞에 앉아서 부산스럽게 흐트러진 책들만 고개를 돌려가며 넘겨볼 뿐 반응이 없다. 


'혹시 귀가 안 들리는 건 아니겠지.'

"상윤아, 까까!"

하니 휙 뒤돌아본다.

'휴,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웃었다. 귀엽다고.

이름에는 뒤돌아보지 않으면서 '까까'라는 말에는 기가 막히게 잘 돌아보는 상윤이가 귀여워 죽겠어서 남편이랑 마주 보고 킥킥 웃어댔다. 

그런데 왜일까 싸한 느낌. 확인하고 스스로 '괜찮은 거다.' 위안을 해봐도 어딘가 찜찜한 이 느낌...


상윤이 할머니는 상윤이에게 '시크한 상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다. 

'그래, 시크한 상윤이라 엄마가 부르는 건 귓등으로도 안 듣는구먼. 지가 필요할 때만 쳐다보고.'라고 생각했다. 성격이겠거니... 


부러웠다. 솔직히. 다른 아이들은 엄마의 말도 곧잘 알아듣고 반응하는 것 같은데 상윤이는 나랑 놀지 않았다. 그저 나 혼자 상윤이에게 열심히 말을 걸고,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는 상윤이의 뒤를 쫓아다녀야 했다.


상윤이가 기어 다닐 때는 여느 부모들처럼 '혹시 우리 애가 영재는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상윤아, 사과가 쿵! 어딨지?"

처럼 상윤이한테 책 제목을 말해주면 상윤이가 기어가서 그 책을 집어오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름을 불러도 반응하지 않고, 그 흔한 짝짜꿍 조차 같이 하려 치면 내 손을 계속 뿌리치는 상윤이한테 서운하기도 했다. 


'엄마가 아이를 더 사랑하는 거 같지만, 아이가 훨씬 더 많이 엄마를 사랑한다.'라는 뉘앙스의 구절을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어째서 나만 상윤이를 짝사랑하는 기분이 드는지...

그런 기분이 드는 날엔, 상윤이가 잠들고 난 밤에 눈물을 흘리다가 '아이의 성격을 바꾸려 하지 말자. 살가운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이다.' 생각하며 욕심부리지 말자고, 상윤이의 시크한 성격을 인정하자고 다짐하곤 했다.



눈을 쳐다보지 않는 아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상윤이와 눈을 맞추고, 엄마 얼굴을 확인한 후 활짝 웃는 상윤이의 모습에 세상 부러울 게 없었던, 힘든 독박 육아의 고단함이 스르르 녹던 때가 나도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붙잡고 싶은데 자꾸만 그 시절 상윤이가 흐릿해져, 지금은 마치 '꿈이었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실제로 그랬었는지, 한 때는 상윤이가 정상적으로 발달했다고 믿고 싶은 내 염원인 건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상윤이는 나를 보지 않았다. 이번에는 눈을 의심했다. 혹시 사시인가? 시력이 나쁜가? 눈동자는 정상인 거 같다. 멀리서도 TV를 잘 보는 걸 보면 시력은 괜찮은 것 같다. 그림책 속에 그려진 그림책 속 아주아주 작은 자동차도 찾아내는 걸 보면 오히려 시력은 남들보다 좋은 것 같다.


눈을 맞추려고 상윤이 얼굴에 내 얼굴을 들이밀면 상윤이는 시선을 회피했다. 두 손으로 상윤이 얼굴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 눈을 맞춰보려고 하면 상윤이는 눈동자를 바닥으로 내리꽂거나, 곁눈질로 내 눈을 피했다. 


'그렇구나. 상윤이 나한테 뭔가 삐졌구나.' 상윤이가 무표정하게 내 눈을 피하면 나한테 토라졌다고 생각을 했고, 웃으면서 내 눈을 피할 때면 '부끄러워 그렇구나.' 생각하곤 했다.


따듯한 봄날, 상윤이 조리원 동기들과 벚꽃이 지기 전에 500일 기념 야외 스냅을 찍기로 했다. 아장아장 걸음마하는 상윤이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는데 상윤이는 어쩐 일인지 내 품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임신 9개월이었던 나는 '덥고 힘들다.'는 그런 거 모르겠고 - 그저 상윤이의 웃는 모습을 남기고 싶어 - 상윤이를 업고서 둥가 둥가도 하고 간지럼도 태우며 상윤이를 웃기려고 노력했다. 


- 내 노력의 보상 - 며칠 뒤 상윤이가 예쁘게 웃는 사진들을 받아볼 수 있었다. 

그때는 그냥 상윤이가 웃는 것만으로 행복했고 예뻐 보였다. 몰랐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 사진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상윤이와 마주 보기 위해 내 시선은 한결같이 상윤이를 향해 있는데, 상윤이는 나를 단 한컷도 쳐다보지 않은 채 웃고 있었다. 

상윤이가 엄마인 나를 보지 않는다.



옹알이가 사라진 아이


'아이고 엄마야,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고 했잖아.'

분명 그랬는데, 상윤이가 태어나자마자 나는 무의미한 경쟁을 시작했다. '누가 더 잘 먹나, 누가 더 순한가, 누가 더 깊게 오래 잠자나.'부터 시작된 경쟁은 체중이나 키가 상위 몇 퍼센트인지, 머리둘레 조차도 상위권으로 나오는 게 좋았다. 상윤이 뇌가 크니 똑똑해지는 거 아니냐며...


100일 막 지나고 받았던 영유아 발달검사에서 상윤이는 키도, 몸무게도 모두 상위 1%를 차지하며 엄마의 모유 부심을 불러일으켰다. 첫 돌 즈음 발달검사에서는 키도 또래 평균보다 작고, 몸무게도 왜소해졌지만 괜찮았다. 이유식을 시작하면 살이 빠지는 거라고 정보의 바닷속 어딘가에서 그랬다. 또래보다 빠른 발달을 보이고 있으니 충분했다. 


첫 돌이 지나고 조리원 동기들 단체 카톡방에서 화두는 '누가 먼저 말하나, 누가 어떤 말을 할 수 있느냐.'였다. 아무래도 딸들이 말들이 빨랐다. '뭐? 벌써 그런 말까지 한다고?' 놀랄 정도였다. 그리고 한 명, 두 명, "엄마" 혹은 "아빠"를 말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상윤이도 "엄마", "아빠" 정도는 할 줄 아는 것 같았다. 그런데 확신이 없었다. 명확하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없었다. 그저 상윤이가 내는 비슷한 음절의 옹알이를 듣고 할 줄은 아는데 안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초조해졌지만 초조하지 않은 척했다. 다 때 되면 하게 되어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상윤이가 40.3도까지 열이 올랐던 날 - 자정 넘어 간 응급실에서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해열제로 열 내리면서 스스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했던 날 - 상윤이 옆에서 깜빡 잠이 들고 말았는데 잠결에 들리던 웅얼거림이 그저 꿈속이겠거니 하고 넘겨버렸던 그날.


움직일 힘도 없는 작은 아기가 엎드린 채로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로 웅얼웅얼 "엄마 엄마" 하고 있었다. 나는 급히 불덩어리 같은 아이를 안고 욕실로 가면서 엄마가 미안하다고, 엄마가 상윤이 소리를 못 들었다고 미안하다고 되뇌며 펑펑 울었다. 

이때만 해도 몰랐다. 상윤이가 스스로 나를 다시 "엄마"라고 불러주는 게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는 일이 될지...


그리고 이후 상윤이는 마치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어공주처럼 입을 닫아버렸다.







2016년 4월 11일 엄마의 일기.


사랑스러운 껌딱지 김상윤,

너는 너답게 크면 된다.


엄마는 엄마니깐 별거 아닌 것에도 걱정이 많지만,

너는 그냥 너답게 크면 된다.


말이 느려도, 

아직 빠이빠이를 못해도,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아도, 

정상적이라면 다 괜찮다.


엄마는 알고 있다.

네가 안 듣는 거 같아도 다 듣고 있다는 거,

네가 잘 토라지는 성격이라 토라지면 눈 안 맞추는 거,

부끄러움이 많아 숨는 것도

다 안다.


너는 그 자체로 사랑스럽고 귀여우니

너답게 크면 된다.

눈 맞추고 말을 거는 건 엄마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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