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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Sep 25. 2022

아들에게 한 수 배우다

상우의 명언 모음

일곱 살이 된 후 상우의 가장 큰 변화는 '생각의 깊이'다.


툭툭 무심하게 내뱉는 말에서

나는 종종 신선한 충격을 받곤 한다.


상우와 사소한 갈등으로 잔소리를 할 때면

예전에는 무조건 "네~." 받아들이던 상우가

요즘은 머리가 컸다고 구구절절 옳은 말로 나에게 반격을 한다.


그러다 상우 입에서 명언 한방이 튀어나올 때면 나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전에

"오! 그 말 좀 멋진데! 일단 좀 적어야겠다."

하고는 잊어버릴까 봐 어딘가 메모를 해둔다.


그러면 상우는 메모하고 있는 엄마 옆에서 자기가 한 말을 잘 받아 적는지 지켜보며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해주곤 한다.


그 몇 가지를 적어보자면,




원래 지나치게 뜨겁거나 차가운걸 못 먹는 상우.

저녁식사 시간에 국이 뜨겁다고 투정하길래 내가 한입 맛본 후,


"이게 뭐가 뜨겁다고 그래. 하나도 안 뜨겁네!"

했더니,


"엄마는 안 뜨거워도 나는 뜨겁다고! 엄마는 사람이 각각 다르다는 것도 모르나?"


하고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던 일.




수학 학원에서 내 준 숙제를 할 때였는데, 

상우가 곧잘 한다고 단계 건너뛰고 수준을 올려버려 보기에도 어려워 보이길래,


"이건 상우가 나중에 학교에 들어가서 배울 때 어렵지 말라고 미리 연습하는 거야. 안 배운 거니깐 당연히 어려운 거야. 그러니깐 지금 어렵다고 스트레스 받지마. 이건 그냥 연습이니깐 많이 틀려도 괜찮아."

했다.


하지만 문제를 풀면서 힘들어하는 것 같길래,

"상우야 힘들면 그만해도 돼." 했더니,


"엄마가 연습하는 거라며. 이건 연습이야. 연습을 왜 포기해야 해?"


기특한 소리로 엄마를 반하게 만들고서는

얼마 못가 

"아 이거 너무 어려운데!" 하고 포기한 일.




역시 수학 숙제를 할 때였는데 집중하지 못하고 세월아 네월아 하는 모습을 답답하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 너무 힘들어." 하기에


"오래 걸려서 힘든 거지. 열심히 안 하니까."

하고 살짝 짜증 담아 한소리 했더니


"원래 열심히 안 하면 안 힘들고 열심히 하면 힘들다고!"


오히려 내게 버럭 하여 당황하게 한 일.


'맞는 말이긴 한데 너는 그냥 열심히 안 하고 있는 거야.' 하고 외치고 싶었지만 가소로워서 31살 많은 내가 참은 일.




그리고 학원 선생님이 '상우의 명언'이라고 적어준 

"일단 한번 해보고 틀리면 다시 해보면 되지요."까지.


요즘 명언제조기가 따로 없는 상우.

기대된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명언들이 쏟아져 나올지.

또 너의 생각이 얼마나 더 깊어질지.







말은 다 큰 척 해도

행동은 어리숙 하니깐 아직 일곱 살.

대들지 마라. 나 너보다 31살 많다. 앞으로도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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