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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Sep 28. 2022

비록 구불구불한 길이라도

25살 윤소영이 38살 윤소영에게

오랜만에 싸이월드에 들어갔다가

2009년도에 멈춰있는 다이어리를 역순으로 읽어 내려갔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손발이 오그라드는 일기도,

그땐 뭐가 그렇게 절실했는지 지금은 그때의 심경이 이해가 안 되는 일기도,

왜 썼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일기도 있었지만,


2009년 14년 전,

25살 11월에 쓴 일기의 내용이

신기하게도 마치 지금의 나를 알고 있는 듯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원래 길을 자주 잃는다.

동대문운동장에 산 지 한 달도 넘게 지하철 역에만 들어서면 집을 찾지 못했고,

매주 가는 명동 길을 아직도 못 찾아 헤매고 있고,

인사동에 가려고 하면 종로 3가 6번 출구에 꿀을 발라 놓은 듯

매번 낙원악기상가를 거쳐 빙글빙글 힘들게 돌아가야 하고,


아직도 광화문에서 청계천을 찾을 줄 모르고,

방향을 몰라 버스 탈 줄도 모르고,

택시를 타면 기사님이 제대로 된 길로 가고 있나 의심스러워 마음이 내내 불편하고,

매번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법을 몰라 1시간 넘게 걷는 건 일상이고,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며 25살이나 먹어 징징거리기 일쑤고...


그래도 어릴 땐 길을 잃는다는 게,

모르는 곳에 서 있는다는 게,

두렵고 무섭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컸다고

모르는 길에 들어서도 계속 걷다 보면 언젠가 도착지에 다다른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알지도 못하면서 찾아갈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겨나고,


새로운 곳을 찾아내는 즐거움과

사람 구경, 가게 구경하는 즐거움도 알게 되고,


콧노래 부르며 걷기도,

생각에 잠겨 걷기도 하다 보면

'무사히 도착!'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이 나에게는 특별한 일이 되고...


인생도 뭐 별거 있나,

내가 드라마를 보며 지낸 24시간도,

잠만 자며 보낸 24시간도,

능률 없이 공부하며 지낸 24시간도,

지금은 헤어져 끝나버린 사랑 하며 지낸 그 시간도,

결국은 내가 걸어온 길이고,


후회를 하든,

고생을 하든,

희열을 느끼든,

즐겁든,

화나든,

돈이 많든,

궁상이든,

어쨌든,


내가 가고 있는 길이 구불구불한 길이라 할 지라도

계속 걷다 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은 하게 돼있다는 거지."




어쩌면 25살 나는,

38살에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을 거라 믿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은

그땐 나 혼자 걸었지만,


지금은 함께 걸어주고 길을 제시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든든함의 차이.







그리고 지금은

스마트폰 지도 어플과 네비게이션이 있어서 길을 잃지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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