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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Sep 21. 2022

차라리 모른 척해줄래(3)

가족의 장애 이해

터졌다.

"싫어요!"

상우가 결국엔 울음을 터트렸다.


라스트팡의 성공은 마냥 통쾌할 것만 같지만 실상은 나에게도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힌다.

가족이기 때문에.

좋은 것만 보여주고 좋은 말만 들려줘도 부족한 내 아이이기 때문에.


가족은 슬퍼하면 같이 슬퍼지고 기뻐하면 같이 기뻐지는 거라고 바로 직전에 ‘내가’ 말했다.

상우가 속상해하고 마음 아파 울면 나도 울컥 눈물이 차오른다.

예나 지금이나 이 욱이란 놈은 꼭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고 나서야 쪼그라든다.

욱이란 놈. 나쁜 놈.


소설에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구성 단계가 있듯, 나의 훈계에도 기승전결이 있으니,

바로 지금이다! 절정의 순간!

이 말을 하기 위해 지금껏 단계적으로 밑밥을 깔아 뒀던 터였다.


“엄마가 계속 말했지? 너만 즐겁고 친구는 즐겁지 않은 장난은 괴롭힘이라고.

말도 마찬가지야. 상우는 말하면서 즐겁고 재밌지만 상우의 말 때문에 친구가 속상해하면 그것도 괴롭힘이야.

엄마는 상우가 친구의 약점을 말하면서 상우 혼자 즐겁고 재밌는 것보다,

친구가 기분 좋아하는 말을 하면서 친구도 상우도 함께 즐거웠으면 좋겠어.”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상우가 대답했다. 잠시 침묵의 순간이 찾아왔다.


‘내가 너무 아이의 기를 죽이는 건 아닌가.’

아이에게 훈계를 하다 보면 이렇게 착한 엄마 병이 두더지처럼 불쑥 고개를 내민다.


그렇지만 중간에 아이가 가여워 멈추면 이 아이는 기만 죽고 어떤 교훈도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엄마로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끝까지 전달할 필요가 있다.

행동 수정의 논리대로라면 하다가 만 중재는 안 하느니 못하다는 것.

어쨌든 절정에 이르고 결말까지 봐야 ‘상우의 죽어가는 기에 다시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다’ 이 말이다.


“그러면 상윤이 형을 보면 뭐라고 해요?”

상우가 조심히 입을 뗐다.


“‘우리 형은 한글을 잘 읽어.’, ‘우리 형은 노래를 잘해.’, ‘우리 형은 더하기 빼기도 할 수 있어.’ 이렇게 이야기해도 좋겠지만 ‘엇! 저기 우리 형이다!’라고만 해도 좋아.”


“형아 한글도 진짜 잘 쓰잖아요. 나보다 잘해!”


“맞아. 형도 잘하는 게 많으니깐 다음부터는 못하는 거 말고 잘하는 거 얘기 해주자. 그렇지만 상우야, 유치원 급식실에서 형을 만났는데 상우가 생각하기에 형이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땐 진짜 모른 척해도 괜찮아.”


“부끄러운 행동이 뭐예요?”

“밥 먹다가 의자 위에 올라간다든지, 급식실을 돌아다닌다든지, 소리를 지른다든지 하는 행동들 말이야.”

“형 진짜 그러는데요.”

“그럴 때는 친구들에게 우리 형이라고 소개하지 않아도 괜찮아.”

“안 부끄러워요.”


“지금 말고 상우가 어느 날이든 그런 생각이 들 때, 그런 날이 오면 말이야. 그땐 상우가 형을 모른 척 해도 엄마가 이해해줄게.”


말하면서도 참 어렵겠다 싶었다.

언제는 가족이 아니니깐 모른 척하라더니 지금은 또 부끄러우면 모른 척하라고 하고,

장애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면서, 듣는 사람이 기분이 좋지 않은 말은 약점이니 말하지 말라고 하고...

결론은 그냥 ‘케바케(경우에 따라 다르다)’라는 것.


말 많고 잔소리 많은 엄마랑 살다 보니 우리 상우가 언어 이해력이 높다지만 고작 7살일 뿐이고, 나조차도 어려운 이 말들을 다 이해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마음이 드는 날,

형이 부끄러워지는 날이 오더라도 ‘아 그때 엄마가 이해해 준다고 했었지.’ 하고 소홀히 던져둬 어디 있는지 조차 모르는 그 기억을 꺼냈으면 좋겠다. 그 마음을 이해해주는 엄마가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런 상황을 겪는 사람이 적을 뿐이지, 모두 그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을 거라고,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들이대는 잣대에 마음 쓸 필요 없다고...


차는 학원에 도착했고 상우는 축 처진 어깨와 그 어깨보다 더 내려앉은 입꼬리를 하며 모르는 사람이 딱 봐도 ‘이 아이는 엄마한테 혼났나 보다.’ 포스를 풍기면서 학원으로 들어갔다. 원장님과 담당 선생님은 상우의 기분을 풀어주며 애쓰시면서도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안심시켜주셨다.


상우가 학원에 들어가면 으레 상윤이는 다이소에 들러 좋아하는 과자를 사고, 상우가 좋아할 만한 과자를 골라준다. 상윤이가 과자를 2개 사면 상우도 2개. 3분 카레 하나와 뽀로로 스티커북 하나를 골라 담으면 다이소 쇼핑 끝. 학원 앞 커피숍에 가서 나는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시면서, 상윤이는 뽀로로 스티커북을 한 권 해치우면서 상우를 기다린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모습에서 조금은 밝아진 상우의 표정에 안심했다. 그리고 차에 탄 상우에게 좋아할 법한 과자 두 개를 내밀었다.


“두 개네!”

“응 두 개 다 상우 꺼야.”


상윤이가 두 개 샀으니깐 두 개 산거고, 상윤이는 이미 먹어버려서 없는 것뿐인데 ‘이건 네가 좋아할 것 같은 과자고 나는 너에게 두 개나 줬다.’며 말에다 생색을 살포시 얹었다.


운전을 하는데 뒤에서 상우가 작은 목소리로 형에게 뭐라고 하길래 안 듣는 척, 모르는 척, 운전만 하고 있는 척하며 듣고 있었다. 상우는 형에게 과자 한 개를 건네주며 말했다.

“형 이거 좋아하잖아. 이거 형 먹어.”


상윤이가 과자를 받자 상우는 상윤이에게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속닥속닥 나지막하게 말했다.

"형 그때는 미안했어."






상우 목욕시간.

상우랑 나랑 단둘이 오붓하게 이야기 나누기 좋은 시간.

상우가 말했다.


"엄마 아까 차에서 내가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었던 건 제가 잘못한 거 같아서 반성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엄마가 과자 두 개 준 거, 한 개는 상윤이 형한테 줬어요. 너무 미안해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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