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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Oct 02. 2022

이발하기

상윤이 이발하기는 육아 레벨 중에 난이도 최상이었다.


아기 때부터 미용실에 가면 자지러지게 우는 탓에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고,

그 때문에 잘라 떨어진 머리카락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떨어지지 않아

원래도 싫은 이발이 아이에게 더욱 혐오 자극이 되었다.


나중에는 미용실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자지러지게 울어

이발을 해야 할 시기가 되면 나의 스트레스는 극심했다.


웬만하면 아이의 육아를 남편에게 미루거나 하지 않는데,

아이의 발버둥이 힘에 겨워 남편에게

"오빠가 미용실에 좀 데리고 가줘."

부탁했으나, 한 번 데리고 가곤

"도저히 못하겠다." 항복.


그래도 아기 때부터 다니던 미용실은 가격이 비싸긴 했어도

"원래 아이들은 36개월까지는 다 울어요. 우리 애들도 울어요."

하시며 이해해 주시는 원장님이 계셔서 다닐 만했다.


36개월이 지났을 때는

"남자애들은 초등학교 갈 때까지도 우는 애들이 많아요."

하셨다.


울며 발버둥 치는 아이를 붙잡고 있노라면 관절 마디마디가 다 아팠고

경직된 근육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미용실 원장님과 손님들의 눈치도 많이 보였다.

그럼에도 이발하러 갈 곳이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됐다.


어쩌면 원장님도 속으로는,

'어휴 저 시끄러운 애 또 왔네.' 했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모른 척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이 미용실에 계속 다녀야 했는데,

'아기 때부터 원래 저런 애'라고 이미 알고 있다는 점과

손이 빠르시고 실력이 좋으시다는 점,

그래서 대충 뚝딱 자르시는 것 같은데도

머리 스타일이 태가 나 만족스럽다는 점 때문이었다.


문제는 우리 가족이 이사를 가면서부터였다.

미용실을 찾는 데 난항이 예상됐다.

상윤이는 머리를 자를 목적 없이 그냥 미용실 앞에만 지나가는데도

여전히 엉덩방아를 찧으며 악을 쓰고 울었고,

나는 이 아이의 히스토리를 모르는 미용실에 가는 게 미리 걱정이 돼서

선뜻 이발을 시도하지 못했다.


제주도에는 미용실을 운영하는 사촌언니가 있다.

나는 애들이랑 친정에 간 김에 사촌언니의 미용실에서 상윤이 이발을 하고 오자고 생각했다.

그래도 사촌언니니깐 아이가 민폐를 끼쳐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 주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상윤이는 역시 자지러지게 울어댔고,

나는 물론 친정엄마와 머리를 자르는 사촌언니까지 진땀을 흘렸다.


자, 이제 이해의 시간이다.

아이의 발달장애에 대해 오픈하고 아이의 행동에 대해 양해를 구하자.

그러나 사촌이니깐 내게 더 솔직히 말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왜 간과했을까.


“아이가 이렇게 울면 미용실에서도 싫어해.

다른 손님들도 싫어하고 자르는 사람도 싫어해. 애도 힘들고. 차라리 네가 집에서 잘라줘.”


알고 있다고. 싫어하는 거.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머리는 잘라야 되니깐 알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 해왔던 거지.

그런데 이제 이렇게 다이렉트로 들어버리면 지금부터는 모르는 척이 안 된다는 거다.


나는 집에 와서 바로 이발기와 가위, 이발 용품을 구매했다.

유튜브로 남자아이 머리 자르기 동영상을 매일 시청했다.

다시 이발할 때가 되었다.

TV 앞에 식탁의자를 갖다 놨다.

상윤이를 식탁의자에 앉혀놓고 TV는 타요, 손에는 휴대폰을 쥐어 주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망하면 어떡해?”

“애들 머리는 금방 자라.”

남편의 말에 용기를 얻어 도전.


결론을 말하자면 상윤이는 울지 않았다.

머리는 음... 딱 집에서 자른 머리 같았다.

못 봐줄 정도는 아니지만 아마추어가 자른 머리.

그럼에도 아이가 울지 않았고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아 정말 좋았다.


왜 상윤이는 울지 않았을까?

머리를 자르는 행위의 문제는 아니었던 거다.

내 개인적 추측으로는 컷트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검은색 컷트보를 두르는 순간 몸이 사라진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이 어린 상윤이에게 공포로 다가왔던 것은 아니었을지...


몸은 사라지고,

머리카락은 잘려나가고,

움직이지 못하게 붙들려있고,

위이잉 소리 나는 기계가 피부에 닿는 낯선 느낌,

낯선 사람,

그 분위기 전체가 아이에게 공포였을 거다.


이후 상윤이의 머리는 내가 잘라주었다.

잘 자를 때도 있었고,

욕심부리다 실패해서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삭발했던 적도 있다.


상윤이는 자신의 외모에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삭발하고 난 후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 후 펑펑 울었다.

잘생긴 애를 이렇게 만들어놨다고,

혹은 원래 이상한 애를 더 이상해 보이게 만들었다고 주위 원망도 좀 들었다.


삭발을 해도 마음은 이쪽이 더 편했지만,

그래도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면 더 멋있어질 텐데...’ 하는 미련이 들기도 했다.


약 2년 동안 그렇게 내가 머리를 잘라주다가 무심코 툭.

“상윤이 미용실 갈까?”

그냥 툭 던졌는데,

“네!”

덥석.


얘가 잘 못 들었나 싶어 다시 몇 번을 물어봐도 가겠다기에 기회를 놓칠 새라 바로 미용실로 향했다.

진 곳에 있어 손님이 갈 때마다 없고,

손이 무척 빠르면서 커트를 잘하는 미용실을

미리 상우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알아두었다.


상윤이는 울지 않았고, 싫지만 참으며 의젓하게 머리를 잘랐다.

비용은 만 이천 원.

드디어 상윤이 이발에서 해방이 되는구나.

상윤이도 전문가의 손길로 멋쟁이가 되는구나 싶었다.

미용실에서 처음 머리도 감아봤다.

아이의 성장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러나 참 사람 맘이 간사하다.

그렇게 미용실을 안 갈 때는

‘아무리 비싸도 눈치 주지 않고 상윤이를 받아주는 곳이 있다면 무조건 간다.’고 생각해 왔는데,

상윤이가 막상 미용실 가서 머리를 자를 수 있게 되니 이제 이발비가 아까워지기 시작한 거다.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렸다.

아마 2년 동안 상윤이 머리를 계속 잘라주면서 내 이발 실력이 향상된 까닭도 있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2년.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상윤이도 컸고,

나도 컸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일. 이발하기.






지금 당장은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사건 때문에 매우 낙담할 때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그 일이 해결이 될 때도 있고,

혹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내가 해결책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렇게 과거에 나를 힘들게 하던 일이

'더 이상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는 날이 온다.


우리는 모두 성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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