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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Oct 07. 2022

우동 한 그릇

엄마의 엄마 이야기

엄마가 상윤이만 했을 때

아주 가난했던 기억.


엄마가 살던 곳은

천천히 두발에 힘을 주고 걸어 올라가다가

막판에 아주 가파르고 굽이진 오르막을 만나면

네발로 기어올라가야 다다를 수 있었지.


작은 세탁소 가게 안 단칸방 하나.

가게 구석에 임시로 작은 방을 하나 더 만들어

엄마랑 삼촌이랑 거기서 책도 읽고 잠도 자고 그랬어.

세탁소 가득한 옷 먼지 속에서 콜록 대다가

천식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지.


화장실도 없었어.

바깥에 나가 공동화장실을 열쇠로 열고 이용해야 해서

화장실 가는 게 얼마나 싫었는지 몰라.

밤이 되면 얼마나 무서웠게.

손전등을 든 외할머니 팔짱을 꼭 끼고 화장실을 갔어.

문을 살짝 열어두고 외할머니는 밖에서 망을 보곤 했지.


학교에 가려면 시장을 지나가야 했어.

바닥은 늘 더러운 물로 질퍽거렸고,

생선 비린내가 얼마나 심하던지 코를 막고

물웅덩이를 피해 뛰어가곤 했어.


다들 그래서였을까.

친구들은 모두 달리기를 잘하더라고.

원래 엄마도 달리기를 잘했는데

학교에서는 자꾸 꼴등을 하는 거야.

6명이 달리면 꼭 5등 아님 6등이었어.

그런데 나중에 이사를 가게 돼서 전학을 갔는데,

거기선 달리기 시합만 하면 1등인 거야.


아, 맞다!

그때 빨간 마스크라는 무서운 이야기가 유행이었거든.

엄마는 무서워서 일부러 못생긴 표정을 짓고는 뛰어다녔어.

어쩌면 그래서 달리기를 잘하게 된 걸지도 몰라.


외할머니랑 엄마랑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우동 집이 하나 있었는데,

가격도 싸고 진짜 진짜 맛있었어.

엄마는 아직도 그때 우동보다 맛있는 우동을 먹어본 적이 없어.


그 이후 분식집에 가면 늘 우동을 시키곤 했는데

그 맛이 안나더라고.


일본에서 유명한 우동을 먹어도

부산 감만동 우동 맛을 따라가지 못하더라.


엄마는 지금도 우동을 먹을 때면

그때 그 우동 생각이 나.

외할머니랑 맛있게 배부르게 먹었던 우동.

추운 날 집에 가다 잠깐 들러 얼어버린 볼과 손을 녹이던 그곳.


그땐 몰랐었는데,

엄마가 그때의 외할머니 보다 어른이 되고 나니

그 시절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코끝이 시큰거려.


지금 엄마 나이보다도 어렸던 외할머니는

사는 게 얼마나 힘들고 마음 아팠을까...


우리 집은 더 넓고 깨끗하고,

화장실도 두 개나 있고,

아파트만 나가면 학교가 있고,

너희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맘껏 사 먹일 수 있는데도

엄만 세상 사는 게 참 힘들기만 한데...


그렇지만

엄마는 그때를 생각하면 하나도 싫지 않아.


모든 기억이 다 행복해.

힘들었던 기억도,

싫었던 기억도,

아팠던 기억도 그냥 다 행복해.


우리 가족 오순도순 둘러앉아 먹었던 밥상도,

온기가 전해지던 따뜻한 이불 속도,

엄마에게 조잘조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수 있던 그 시간도...


가장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이라

너무 소중한 기억이야.


그러니깐...

그러니깐 엄마,

이젠 그때 나에게 못해줬던 거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아직도 여긴 그대로 남아있네





상우야, 우동 맛있어?

이렇게 상우가 우동을 맛있게 먹고 있으면

엄마는 상우가 정말 예뻐 보인단 말이야.


외할머니도 엄마를 이렇게 보고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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