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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Oct 09. 2022

태몽

거북이와 하얀 강아지, 큰 거미와 작은 거미

엄마는 뱀 꿈을 꾸고 나를 낳았다고 한다.

작은 뱀이 득실거리는 꿈.

제주에서는 뱀을 칠성이라 하여 재물과 소원을 들어주는 신으로 모신다.

하여, 뱀 태몽을 꾸고 나온 아이는 칠성 기도를 드려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설화가 지금껏 내려오고 있다.

오빠도 나도 뱀 태몽을 꾼 탓에 엄마는 여태 정성껏 치성을 드리고 있는 중이다.


이런 영향 탓일까 나는 태몽에 대한 막연한 환상 같은 게 있었다.

용이 여의주를 물고 가다 떨어트린다든지,

집에 커다란 호랑이가 들어와 호랑이 등을 타고 달린다든지,

황금 사과를 따 먹는다든지 하는...


그런데 내가 꾼 아이들의 태몽은 설명하기에 너무 허무해서 '이게 태몽이 맞나?' 싶은 정도였다.

멋들어진 태몽이 갖고 싶었던 나는 주변 사람이 태몽을 대신 꿔 주기도 한다기에

혹시나 하고 물어봤지만 우리 아이들의 태몽을 대신 꿔준 사람은 없었다.


태몽은 동양권에만 있는 문화고,

임신 중에는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별별 꿈을 다 꾸게 되는데

태몽이라는 것도 그 꿈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하는 현실적 의견도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아이들을 낳고 시간이 지난 뒤에 돌아보니

그 허무했던 태몽들이 쏙쏙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상윤이의 첫 번째 태몽은 거북이를 데리고 오는 꿈이었다.

당시 나는 생각만큼 임신이 잘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꿈을 꿨는데, 집 근처 마트 수족관에 남아있는 거북이 한 마리가 너무 외롭고 쓸쓸해 보여 집으로 데려오는 꿈이었다.

태몽이라기엔 거북이가 너무 평범했고 마트의 이름까지 생각나는 그냥 평범한 꿈이었다.


며칠 후 쓰레기를 버리려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신 테스트기를 한 번 더 확인해 보았다.

내 눈에 아주 희미한 두줄이 보이는 거였다.

정말 내 눈에만 보였다.


원래 시간이 경과한 임테기는 부정확하기에 다시 검사를 해봤는데,

희미한 두줄이 분명히 나왔다.


울었다.

긴장이 풀려서,

가슴이 벅차서.

그렇게 상윤이가 찾아왔다.


그리고 거북이 태몽을 꾸고 나온 상윤이는 정말 거북이(발달지연 아이들을 부르는 애칭)가 되었다.


일전에 답답한 마음에 사주를 본 적이 있는데,

"우리 큰 아이는 오래 살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워낙 사건 사고가 많은 아이라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역술가가 대답했다.

"이 아이는 일단 50대까지 대운이 받쳐주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세요?"

거북이 태몽의 아이는 '장수' 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두 번째 상윤이 태몽은 임신 초기 입덧할 때  흰 강아지 꿈이다.

작고 털이 복슬복슬한 하얀 강아지가 내게 뛰어와 안겼다.

나는 그 강아지와 같이 뛰어놀았다.

하얀 강아지 태몽은 순수하고 착한 아이를 갖게 되는 꿈이라 했다.


신랑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와! 태몽이 이렇게 정확하다니!

세상에 이렇게 순수하고 착한 아이가 어딨어?

그런데 좀 덜 순수했어도 좋을 뻔했어.

이 정도로 순수할 줄은 몰랐지."


상우를 임신했을 때는 입덧도 거의 없었던 데다가

과일이 특히 먹고 싶어서 딸인 줄 알았다. 

첫째가 아들이어서 둘째는 딸을 많이 원했기에 태명도 봉순이로 했다.


상우도 태몽을 두 번 꿨는데, 두 번 다 거미 꿈이었다.

한 번은 나만큼 큰 검은색 거대 거미가 집으로 들어오는 꿈,

한 번은 작은 검은 거미떼가 내 주변을 바글바글 둘러싸고 있는 꿈이었다.


검색해보니 거미 태몽은 99% 아들이고, 1%는...

아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상우는 12주, 누구보다 일찍 초음파 사진에서 남자아이임을 부정할 수 없게 다리를 쫙 벌린 채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날 봉순이는 순봉이로 태명이 바뀌었다.


검은 거미는 아들, 흰 거미는 딸.

큰 거미는 아들, 작은 거미는 딸이 라는데 상우는 내게 살갑기가 딸 같은 아들이다.


거미 태몽의 아이들은 효자라고 한다.

우영우 드라마에도 나오듯 자폐 아이를 키운다는 건

외로움을 견디는 마음수련 같은 일이다. 

부모는 아이의 전부이자 아이의 세상이라고 하던데 상윤이는 다른 세상에 있었다.


받는 사랑에 대한 결핍에 지쳐갈 때 

상우가 짜잔 나타나 사랑 표현을 아낌없이 해주며

형 몫까지 충분히 채워주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이것 만으로도 효자 노릇을 충분히 해온 상우다.


사실 어떤 태몽을 꾸었든

그냥 김상윤으로,

그냥 김상우로 태어났을 거라는 거 알고 있다.


딸이길 바랐든 아들이길 바랐든

어긋난 결과에 실망한 날도 분명 있었지만,

성별이 정해진 그 순간부터

아들인지 딸인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내 아이였을 뿐.

누구보다 소중하고 예쁜 내 아이.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던 그 순간,

그때도 나는 분명 실망했다.

나의 예민함이길 바랐던 순간이 있었다.

기대와 어긋난 결과에 심장이 내려앉고 가슴이 저리던 순간이 있었다.

병원에서 아이의 검사 결과를 듣고 KTX를 탔을 때 까진 아무렇지 않았는데

역에서 집까지 홀로 터덜터덜 걸어오던 밤 길,

갑자기 다리 위에서 울음이 터져 가슴을 쥐어뜯으며 목놓아 울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장애인지 아닌지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냥 내 아이였다.

누구보다 소중하고 예쁜 내 아이.


다만, 여전히 믿어보려고 한다.

태몽을 꿨던 그때처럼...

'이 아이는 순수하고 착하게 오래오래 살겠구나.'하고...

'이 아이는 돈도 잘 벌고 효도하는 착한 아들이 되겠구나.' 하고.....




아이의 태몽이 바뀐다고 해서

아이가 변하지 않듯,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됐다고 해서

어제까지 사랑했던 내 아이가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나의 아이는  사랑스럽고 신비롭게 내게 왔듯이

앞으로도  이렇게 커 갈 것이다.

사랑스럽고 신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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