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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Oct 12. 2022

미안한데, 난 하나도 미안하지가 않아

잘 들어봐.

내가 너한테 미안해한다는 건,

내가 너한테 잘못했다는 거잖아.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나는 잘못한 게 없는 거야.


예전에는 밤마다 잠든 너를 껴안고 울었어.

잠이 든 네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나더라고.

미안해서.

나의 부족함 때문에 너도 나도 힘든 것 같아서...


근데 생각을 해봐.

잠든 너를 껴안고 운다고 상황이 달라졌나?

내 마음은 편해졌나?

아니었단 말이지.


나는 계속 너에게 미안해하고

불편함은 그대로 남아있고.

정작 자고 있던 너는 그 사실을 모르고.


나는 살면서 부모님 빼고 그렇게 누구에게 사과해야 할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어.

지나가다가 누구랑 부딪쳐서 "앗! 죄송해요!" 말할 정도. 딱 그 정도였다고.

그런데 왜 나는 너한테 죄인이 되어야 되는 거야?


맞아.

너는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킨 적이 없어.

그래서 억울한 거야 이게.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일을

나 혼자 미안해하고 죄인처럼 매일 밤 울고 있었던 거라고.


그래서 나는 안 울기로 했어.

나는 너에게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어.

나는 잘못한 게 없거든.

나는 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거든.


물론 나의 최선이 너에게 부족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네가 만약 그게 불만이라면

내가 아니라 네가 사과해야 되는 거야.

나의 최선을 알아주지 못하는 너의 좁은 마음을 반성해야 되는 거라고.


너의 장애는 나 때문이 아니야.

이건 너도 나도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 같은 그냥 사고 같은 거야.

사람은 모두 약간 부족하게 태어나는데

너는 그 부족한 부분이 유독 치명적이었을 뿐이야.


나는 단 한순간도 네가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나길 바랐던 적이 없어.

지금도 나는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조금 덜 불편하길 바라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뿐이야.

그러니깐 나는 떳떳해.

그러니깐 나는 너에게 앞으로 사과하지 않을 거야.


나는 너에게 미안하다는 말 대신 사랑한다고 할 거야.

나에게 너를 보낸 이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축복할 거야.

앞으로 너를 부둥켜안고 우는 일 따윈 하지 않을 거야.

네 얼굴을 마주하고 많이 웃어줄 거야.


그러니깐 너도 그냥 딱 한마디만 해주면 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윤이 장애 진단받고 3일 후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너에게

미안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마운 사람이 되기로 했다.


기꺼이 그리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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