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
박사학위를 2012년에 취득했습니다. 2007년 박사과정에 들어갔으니까 7년 만에 학위를 딴 셈입니다.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학위를 취득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심사위원 교수님들이 마지막에 "김박사 고생 많았어요."라고 말을 할 때는 그동안 고생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금장의 박사모를 쓰고 어머니와 기념 촬영을 할 때를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최종 학력이 국민(초등)학교인 당신의 아들이 박사가 됐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지금도 시골 부모님 댁에 가면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이 그때 찍었던 사진입니다.
학위논문을 쓰면서 가장 곤역스러웠던 것은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적 근거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석사논문은 대부분 국내에서 발간된 서적이나 논문을 근거로 내세웠는데 박사논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서양의 논리실증주의가 논문의 뼈대였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습니다. 지금이야 구글이나 파파고와 같은 번역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도움이 됐을 텐데 그 당시엔 이런 프로그램의 도움을 얻기엔 완성도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학위를 취득한 후 어느 날 지도교수님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김박사, 석사와 박사의 차이점이 뭔지 아나?"
"아~~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 나름대로 생각한 바가 있었지만 교수님이 제게 알려주고 싶은 차이점이 따로 있을 것 같아 쉽게 답변할 수 없었습니다.
"석사는 말이야. 자기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이 쓴 논문이나 책을 참고하여 잘 정리하면 되는데, 박사는 달라. 박사는 생각을 정리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단계를 뛰어넘어 자기만의 주장을 펼쳐야 하지. 주장에는 반드시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 그리고 살아온 삶이 융합되어야 해. 단순히 자기주장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해 외국문헌만 뒤지고 유명한 사람의 입을 빌려 그럴싸하게 포장만 하면 안 된다는 거야.”
“이번에 김박사의 논문을 최종 통과시키기로 한 이유가 뭔지 아나?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주장에 자네의 가치관과 삶이 녹아 있어서, 그래서 장차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 보여서 심사위원에게 이만하면 됐다고 했다네."
지도교수님이 이런 말을 해주기 전에는 내 논문의 주제가 참신하고 교육계에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해주셨습니다.
"김박사! 이제 박사님도 됐으니 어디 각주로부터 자유로운 글을 한 번 써보지 그래?"
"네? 각주로부터 자유로운 글이요?"
지금껏 나는 석사와 박사논문을 쓰면서 내 글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찾기에만 혈안이 돼 있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새로운 주장을 하더라도 이미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십수 년 전부터 주장했던 내용이었습니다. 각주 없는 글쓰기는 데카르트나 칸트 아니면 헤밍웨이나 데이비드 소로우와 같은 분들이나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2년 그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그래. 자네의 삶이 묻어나는 진솔한 이야기를 해봐. 꼭 전공과 관련 없는 글이어도 괜찮아. 자신 있게 쓰고 타인에게 보여줘 봐. 그럼 언젠가는 인정받는 사람이 돼 있을 거야.”
“박사는 말이야. 자네가 글을 쓸 때 자신감을 주는 공식적인 라이선스라고 생각하네. 사실 박사학위가 없어도 돼. 실제로 멋진 글을 쓰는 분들 대부분은 학위 따위는 없어. 필요도 없고. 하지만 자네는 어떤 이유에서든 학위를 땄으니 이제 자유롭게 어떤 것에 구애받지 말고 글을 썼으면 하네.
그 당시 나는 교수님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학술등재지에 논문을 많이 발표하여 실적을 쌓아 대학교수가 되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이후 4년을 더 각주 없는 글쓰기가 아닌 각주 있는 글쓰기를 지속했습니다. 단지 그 각주의 양이 조금 줄었을 뿐 각주 없는 글쓰기는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런데
11년이 지난 지금 교수님이 그 당시 내게 해준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각주로부터 자유로운 글을 써 보게나!"
지도교수님의 말씀처럼 2022년 10월부터 브런치 작가가 되어 각주로부터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낯설고 어려웠습니다. 지금까지 각주 있는 논문만 쓰다가 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글을 쓰기가 쑥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여러 작가님들이 미숙한 제 이야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라이킷'을 살포시 눌러줄 때마다 알 수 없는 묘한 힘과 용기가 생겼습니다. 각주로부터 자유로운 글을 쓰는 초보의 이야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작가님들이 너무 고마워서 저도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모든 작가님의 브런치를 '구독'했습니다. 저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으려는 제 조그마한 다짐이었습니다.
매일 읽으면서
"아 나도 이분들처럼 노력하면 출간작가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