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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Mar 23. 2023

아버지와 고양이

시골 아버지와 콩이의 짧은 사랑

"오빠 지난주에 시골 부모님 보고 왔는데 아빠가 걱정이야"


"무슨 일 있었어?"


"2년 정도 키우던 콩이가 갑자기 죽어서 많이 슬퍼하셔"


"아~ 설날에 봤을 때는 살이 많이 쪘을 뿐 건강해 보였는데"







얼마 후면 여든이 되는 아버지께서 눈물을 보였다는 말에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바닷가에서 바람과 파도와 싸우며 고기 잡고 양식하며  우리 삼 형제를 키웠습니다.

시골에 있으면 당신처럼 힘든 어부가 될 것이라고 삼 형제 모두 다른 지역으로 유학을 보낼 정도로 강인하신 분이 슬퍼서 우셨다는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그것도 바닷가 시골분들은 도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반려동물의 개념이 없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는 그냥 마당에 목줄을 메고 먹다 남은 일명 짬밥을 주며 키웠습니다. 심지어는 키우던 개를 식탁에 올려놓기까지 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미개인들이나 할 법한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아주 오래전엔 그랬습니다. 지금은 시골도 애완동물을 키우는 집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답니다.






어느 날 잠을 자는데 창고에서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가 구슬프게 계속 났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소리 나는 곳으로 가보니 잘 걷지도 못하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통나무 사이에 빠져 애처롭게 울고 있었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가차 없이 마당에 내놓았을 텐데 제 딸인 손녀가 고양이를 좋아해서 손녀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방에 데려와 키웠다고 합니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가 새끼 고양이를 집에서 키워 봤겠습니까?

그냥 아기 분유를 사다가 우유병에 먹여주고 종이상자 집을 만들어 방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고양이 예방접종은 있는 줄도 모르는 분들이고 동물병원이라고 하면 키우던 소나 돼지가 아팠을 때 가는 병원 정도로만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집안에서 키웠는데 이 녀석이 조금 크니 방에 똥을 샀는데 그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어쩔 수 없이 마당에 있는 창고에 데려다 놓고 키웠습니다.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이렇게 귀엽게 생긴 애가 저렇게 지독한 똥을 쌀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요.




지난 추석에 갔을 때는 우리 딸이 "이 고양이는 여자라 임신할 수 있으니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한다"라고 할아버지에게 알려드렸더니,


"아야~ 이 쬐깐한 고양이를 뭣하러 수술을 한다냐. 새끼 나면 우리가 또 키우면 되재. 하하하"

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설에 갔을 때는 걱정이 되셨는지 중성화 수술인가 뭔가 하려고 동물병원에 데려갔는데 20만 원을 줘야 한다는 수의사의 말을 들고 너무 비싼 비용에 깜짝 놀라 그냥 데려왔다고 합니다.


"새끼 못나게 하는 수술이 그렇게도 비싸다냐?"


"네 아버지 도시에서는 30만 원도 넘어요"


설 지나고 얼마 후에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아야. 내가 동사무소에 가서 물어봉께. 고양이 세 마리를 잡아오면 꽁으로 수술을 해준다고 하더라"


"아니 두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를 어떻게 데려가요?"


"그랑께 말이다. 그렇잖아도 두 마리만 더 잡아서 데리고 가면 우리 콩이 수술시킬 수 있겠다 싶어서 동네 고양이를 잡아 불라고 했재"


"그래서 잡으셨어요?"


"아야. 잡기는 어떻게 잡냐? 이 놈들이 영악해서 그런지 지들이 좋아하는 참치로 꼬셔도 눈치만 보고 오덜 안 하냐. 무슨 수로 고양이 두 마리를 더 잡을까냐? 그나저나 큰 일이다야. 우리 콩이 임신 못 하게 수술해야슨디. 수놈이었으면 이런 걱정도 안 한디. 하필 기집애여서...."





이런 콩이가 죽었다.

새벽 댓바람에 아버지 혼자 바다에서 일을 하고 오면 제일 먼저 선창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녀석.

나이 든 할애비를 아무도 반기지 않는데 이 녀석은 당신이 좋다고 요리조리 따라다니는 기특한 녀석.

그래서 제일 큰 닭다리도 던져주고(닭다리 먹다가 목에 걸려 죽을 뻔한 이후로 닭다리는 안 주셨음), 산낙지도 던져주고, 소금에 푹 절인 영광굴비도 던져주면서 이뻐하던 꽁이였습니다.



갑자기 코에 피가 나고 먹지도 않고 해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곧 죽을 것 같다고 치료가 이미 늦었다는 말을 듣고 울면서 데려왔습니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 콩이를 시골집 마당 앵두나무 바로 옆에 묻어주었다고 합니다.

짧은 생을 마감한 녀석이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삼 형제도 못한 끈끈한 정과 사랑을 준 우리 콩이가 부디 하늘나라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한참 후에 아버지께 전화드렸습니다.


"아버지 잘 지내세요? 이번 주말에 아버지 적적하실까 봐 키우시라고, 고양이 한 마리 데리고 갈려고 하는데 괜찮으시죠?"


"아야 뭔 소리 다냐. 나 고양이 싫어야. 그 뭐시냐. 고양이 털 알르기냐 뭐시냐가 있어서 못 키워. 데려 오면 큰일 난다 잉"


아니 2년 동안 콩이를 키울 때는 단 한 번도 고양이 털 알레르기 있다는 말씀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네.

아마 나이 드신 아버지도 또다시 정(情) 붙이고 정 떼는 일이 쉽지 않은가 봅니다.


이번 설날에 찍은 고양이 '콩이'입니다. 콩이는 어머니가 처음 본 새끼고양이가 꼭 콩처럼 작다고 지어준 이름입니다.

#고양이#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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