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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May 17. 2023

워째야 쓰까

엄니의 기분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저절로 나오는 취임새다.

어머니는 그런 오빠의 어깨와 팔을 자꾸만 쓸어내렸다.
워째야 쓰까 ..... 워째야 쓰까이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다가 남편의 장례식장에서 조카를 보자마자 (주인공)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 "워째야 쓰끄나(쓰까)" 부분(82쪽)에서 나는 책을 덮었다.




"워째야 쓰까"

익숙하고 정겹고 낯설지 않은 이 말을 나는 어머니의 아들로 자라면서 많이 들었다.

어머니는 "워째야 쓰까"라는 말을 참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워째야 쓰까!
참말로 늬집 딸인디 이라고 이삐데?"




여기서 "워째야 쓰까"는 '어떻게 할지 모를 정도'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주로 '참말로'라는 강조의 말과 함께 사용한다. 이 말을 의역하면 "어떡해? 누구 집 딸인지 모르겠는데 엄청 예쁘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결혼한 지 8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자 어머니의 입에서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말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대학 1학년 때 과 커플로 만나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자마자 결혼을 하였다. 아내는 대학 4년과 군대 2년 그리고 제대 후 3, 4학년을 마칠 때까지 나를 기다려 결혼을 했다. 우린 학교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사이가 좋은 커플이었다.

그런데 옛말에 부부 금실이 좋으면 아이가 늦게 생기거나 안 생긴다고 하더니 우리가 그랬다. 우리 딸은 8년 만에 낳은 말 그대로 귀하디 귀한 아이였다.

어머니는 바닷가 시골에서 공부 잘하여 도시에서 출세한 아들이 자랑스러웠는데, 그런 아들이 8년 간 자녀가 없자 더 이상 동네 아이들을 보며 "이삐다"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손녀딸에게만 "워째야 쓰까! 엄마 아빠 닮아서 이라고 이삐구만"이라는 말만 하신다.







"워째야 쓰까!
이 썩을 놈의 날씨가 염뱅하게 더워 브러서
우리 바다 김이 다 녹아 불것네"


여기서 "워째야 쓰까"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이 썩을 놈', '염뱅하게' 등의 욕설과 함께 사용한다. 이 말을 의역하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날씨가 너무 더워서 우리 바닷가 김이 녹아 망하게 생겼다'라는 뜻이다.


부모님은 평생을 바다에서 고기 잡고 양식을 하며 사셨다. 두 분이서 차가운 바닷바람맞아 성한 몸 하나도 없이 우리 삼 형제 모두를 도시로 유학 보내 키우셨다.

맛도 좋고 영양도 좋은 검은색 김은 9월 중순부터 다음 해 3월 말까지 양식한다. 물론 준비기간은 이보다 훨씬 길다. 김 양식은 매우 거칠고 위험하다. 부모님 모두 손가락 마디가 성한 데가 없을 정도이다. 자칫 잘못하면 겨울 바다에 빠져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김 양식은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너무 일이 힘들어서 바다 김 양식 대부분은 외국인 근로자가 일을 하고 있다. 도움의 손길 하나라도 귀할진대 우리 부모님은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양식하는 배를 태우지 않으셨다. 행여나 당신처럼 커서 바닷일을 하는 사람이 될까 봐서이다. 창피한 일이지만 대학생 때 한 번은 편찮으신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와 바다에 나간 적이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 일주일을 꼬박 앓아누웠다.

이런 김은 날이 추우면 추울수록 잘 자란다. 그런데 언제인가 겨울이 겨울답지 않게 유독 따뜻한 해가 있었다. 어머니는 날이 너무 따뜻해서 "쌔 빠지게 일해서 설치한 김이 다 녹는다"라고 한탄한 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겨울이 몹시 추워서 김 양식이 잘 됐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겨울이 춥지가 않아서 예전만큼 김 양식이 잘 안 된다고 한탄하신다. 나는 그 이유를 '기후변화'에서 찾는데 우리 어머니는 시골 사람들이 바다를 좀 쉬게 내버려 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매년 검디 검은 김 양식을 해놔서 바다의 기운이 다 빠져서 그런다고 말씀하신다.


https://brunch.co.kr/@yoonteacher/88








"왐마, 워째야 쓰까!
김대중 선상님이 돌아가셨다잉
인제 우리나라는 큰 일 나부렀다."



여기서 "워째야 쓰까"는 '너무 큰일이 나서 손 쓸 방법이 없어 안타깝다'라는 슬픈 탄성의 의미로 주로 '왐마', '워매' 등의 감탄사와 함께 사용한다. 이 말을 의역하면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셔서 어떻게 할까? 우리나라는 누가 돌보냐 큰 일 났다"라는 뜻이다.


난 초등학생 때부터 우리나라 대통령은 김대중인 줄 알았다. 우리 부모님은 당신의 어머니와 아버지 걱정과 함께 항상 김대중 선생님의 건강을 염려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김대중을 부를 때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사용하였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1997년 12월 18일에 김대중 선생님이 대통령이 된 날을.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날 마을 사람들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대한민국 만세는 3월 1일 삼일절에만 외치는 구호가 아니었다. 심지어 어머니는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흘리지 않던 눈물을 이날 흘리셨다. 내가 겪어 보지 않았던 그 무언가가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있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정치인 한 명을 이리도 사모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네 사람들 두 손을 모두 번쩍 들게 만든 김대중 선생님이 2009년 8월 20일에 돌아가셨다. 나는 그때 학생들과 윤리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평소 아들 직장생활에 방해될까 봐 낮에는 전화하지 않던 어머니한테 전화가 와 큰일이 난 줄 알고 수업 중에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흐느끼며) 재석아! 큰 일 나부렀다."


"(엄청 놀란 표정으로) 왜요? 어머니. 집에 무슨 일이 생겼어요?"


"왐마, 워째야 쓰까! 김대중 선상님이 돌아가셨다잉. 인제 우리나라는 큰 일 나부렀다."







잠시 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우째야 쓰까"는 어느 작가의 책을 읽다가 이렇게 내게 다시 찾아왔다.


소망이 있다면 앞으로 우리 어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우째야 쓰까"라는 구수한 사투리는 귀엽고 예쁜 아이를 보았을 때처럼 좋은 상황에서만 나오길 바란다.







제목 : 우째야 쓰까


우째야 쓰까

늬집 딸램인데 이렇게 이삐데

엄니는 지나가는 말쑥이네 막내딸이 예쁘다고

호주머니에서 아이 손보다 더 큰 만 원짜리 한 장을 기어이 쥐어준다.


우째야 쓰까

날이 뭔 염뱅하게 이렇게 더울까 쌔빠지게 뿌린 양식김이 다 녹아 불겄네

엄니는 김 팔아 돈 많이 벌어서

도시로 간 아들 공부시켜야 한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우째야 쓰까

선상님이 죽어부렀어야 참말로 인자 우리나라는 누가 지킨데

엄니는 그동안 김대중 선생님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산다고 믿고 있다가

선생님이 돌아가셔서 우리나라를 참말로 걱정하신다.


워째야 쓰까는,

엄니의 기분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저절로 나오는 취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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