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첫 만남은 눈물 나도록
짧고 강렬했다.
초등학생 때 나는 학교 끝나자마자 큰집이라 부른 할머니댁으로 곧장 달려갔다. 그곳에는 매일매일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났고 무엇보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겨서 엄마의 따뜻한 품을 느낄 수 있었다. 아흔일곱 번의 겨울을 맞이하고 그다음 봄을 맞이하기 직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아들만 여덟을 낳으셨다. 큰집의 삼촌들은 갈 때마다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내 손바닥만 한 48장의 화투패로 고스톱을 치는 장면을 보는 것이 지금의 '런닝맨'보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그녀와 만나는 운명의 그날,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삼촌들의 어깨너머로 고스톱 치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아 또 샀네', '피나 먹어', '똥이나 먹어야겠다'와 같은 다소 요상한 말을 재미있게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철수야. 이거밖에 버리고 와라"
담배를 피우면서 화투를 치던 여섯째 삼촌이 내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담배를 밖에 버리라고 주었다. 아뿔싸 이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었다. 그렇잖아도 평소 얼마나 맛있길래 삼촌들이 저리도 담배를 피우나 궁금해하고 있었다. 삼촌은 호기심 가득한 초등 남자에게 맛있는 쌀밥을 지을 때처럼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담배를 내 손에 쥐어 준 것이다.
마당에 나간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내 입술에 가져가 깊게 들이마셨다.
"콜록콜록콜록, 우웩! 우웩!"
코와 입, 눈으로 사정없이 들어간 담배 연기는 쌀밥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아닌 언젠가 속아서 마신 쓰디쓴 한약맛이 났다. 그리고 기침과 함께 콧물과 눈물을 사정없이 흘리게 했고 급기야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담배 그녀는 사나이가 아껴야 할 눈물을 가차 없이 빼앗아갔다.
등 뒤에서는 그런 내 모습을 본 삼촌들의 웃음소리만 야속하게 들렸다.
그날 이후 그녀와의 만남은 지속되지 못했지만, 완전히 헤어진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시험이 끝나면 어른 흉내를 내고 들어간 허름한 선술집 귀퉁이에서 친구들이 건네준 담배 한 모금을 피우면서 그녀와의 질긴 인연을 이어갔다.
내가 본격적으로 담배를 핀 것은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3월부터였다.
대학생이 되면 가게에 들러 주인에게 당당하게 담배 한 갑을 달라고 해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철부지 같은 생각이었다. 1학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날 우리 과에서 담배를 피운 사람이 나와 재수생 단 두 명뿐이란 것에 많이 놀랐다. 사범대여서인지 모두 (모)범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학기를 마칠 때쯤 흡연자가 두 명에서 일곱 명으로 늘어났다. 나는 궁금해하는 동기들에게 아주 친절하게(?) 담배 멋지게 피고 멋지게 끄는 방법을 알려줬다. 나만 몸에 좋지 않은 담배를 피우는 것이 억울해서였을까 하지만 억지로 권하지는 않았다. 자발적으로 피우고 싶은 동기에게만 그 방법을 전수해 주었다.
2학년 기말고사를 마치고 곧바로 군대를 갔다.
그 당시 군대는 흡연자들에게 천국이었다. 국가는 피 끊는 청춘들의 고단함을 달래줄 요량이었는지 한 달에 한 번씩 담배를 제공해 주었다. 담배 피우지 않는 군인에게는 약간의 돈을 줬다. 그때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은 동기에게 담배를 받게 하고 나중에 현금을 주고 다시 샀다. 하루에 많으면 두 갑의 담배를 피운 소위 '골초'였다.
대학 신입생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당연히 당시 여자친구(지금의 아내)는 내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자주 봤다. 농활(농촌봉사활동)을 갔을 때는 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저수지 앞에서 담배 피우는 내 모습이 '참 멋있다'라고도 했다. 당시 나와 여자친구는 아직 어른이 아니었던 것 같다.
군대 제대 후 3학년으로 복학했다. 여자친구는 졸업하여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담배를 많이 피웠다. 담배 피우는 내 모습이 멋지다고 한 그녀는 직장 생활하면서 담배 냄새나는 상사가 싫어서인지 내게 담배를 끊으라고 강요했다. 급기야는 담배를 끊지 않으면 헤어지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하지만 결코 담배와의 이별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았다.
제목 : 담배
작가 : pathos
비 오는 날 코트 깃을 세우고
너에게 불을 붙이면
너는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나를 무대 위의 배우로 만든다.
해 질 녘 초소에서 수평선 바라보며
너를 깊게 들이마시면
나를 몽롱한 정신으로 인도하여 쓴 사랑앓이 달랜다.
왜 하필 이른 나이에 널 만나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었는지
이별의 아픈 순간에도 또다시 널 찾는 악순환이 반복될까
쉬이 너를 보내기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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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거나 얼큰한 국물을 마셔도 생각났다. 여자친구와 싸우는 날이면 이미 내 입에는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있었다. 시험을 보기 전 초초해서, 결과가 좋지 않아서 담배를 찾았다. 여자친구가 물어보면 끊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거의 2년 동안 끊었다가 다시 피고, 조금만 피다가 다시 많이 피고를 무수히 반복했다. 담배는 내 일상 모두를 지배하고 있었다.
대학 4학년 겨울 임용고시를 앞두고 많이 아팠다. 물과 죽만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고 배가 많이 아팠다. 병원에 가도 그 이유를 모르고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 같다고만 했다. 약만 처방에 주었다. 그러다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방구석에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그날 이후
담배를 피우는데 예전의 그 달콤 씁쓸한 맛이 아니었다. 헛구역질이 나왔고 담배냄새는 역겨웠다. 끈질기게 예전의 그 맛을 찾기 위해 시도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냥 맛이 없었다. 나는 하루 한 갑이상 피우던 담배를 조금씩 줄이기 시작했다.
운 좋게 임용고시에 한 번에 합격했다. 임용 첫 해에 고2 담임을 맡았고 윤리 교과를 가르쳤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남자 고등학교여서 그런지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이 많았다. 우연히 화장실에 가면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학교는 그야말로 담배와의 전쟁이었다.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고 수업을 하면 앞에 앉은 학생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담배 냄새 때문이었다. 담배 피우다 걸려서 학생부에 많이 끌려온 한 학생은 수업시간에 내게 이런 말도 했다.
선생님이 지나갈 때마다
담배 냄새가 많이 나서
저도 피고 싶어 집니다.
더 이상 담배를 피울 이유가 없어졌다. 몸도 좋지 않았고, 담배 냄새 때문에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힘들어하는 상황이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담배와 라이터를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더 이상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초등학교 때 호기심으로 처음 입에 대본 담배, 대학과 군대 생활 내내 나와 동고동락을 함께 했던 담배를 이제야 끊은 것이다.
담배는 끊었지만 지독한 그녀는 아직도 날 괴롭힌다. 가끔 베개가 흥건히 젖을 정도로 악몽을 꿀 때가 있다. 꿈속에서 나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다. 꿈속에서 다시 담배를 피우는 나를 보고 실망하고 자책하고 슬퍼한 것이다. 꿈을 깬 후 흡연하는 내가 꿈속의 나였음을 깨달았을 때의 감정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안도감을 준다.
'담배 끊은 놈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음에도 여전히 그놈과 살고 있는 지금의 아내는 아직도 날 의심한다. 회식 자리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 옆에 앉으면 내 옷에 담배 냄새가 배긴다. 유난희 냄새에 민감한 아내는 그럴 때마다 혹시 담배 피우냐고 내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한참 전에 끊은 담배는 이렇듯 나의 삶의 일부분으로 아직도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