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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Nov 11. 2023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20년 넘게 해온 젓가락질을 고쳤습니다.



예전 나의 젓가락질은 이것보다 훨씬 이상했다. 출처 : https://cafe.naver.com/bikecargogo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그러나 주위 사람 내가 밥 먹을 때 한 마디씩 하죠 (뭐라고?)
너 밥상에 불만 있냐?
옆집 아저씨와 밥을 먹었지 그 아저씨 내 젓가락질 보고 뭐라 그래
하지만 난 이게 좋아 편해 밥만 잘 먹지 나는 나예요 상관 말아 요요요
- DJ DOC의 <DOC와 춤을> -





차량번호 12가 1234,
박은빈 선생님,
서울특별시 . . . . 아파트 000동 111호,
핸드번 번호 0117841234입니다.



제자 중에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학생이 있었다. 숫자에 관심이 많은 학생으로 선생님들의 차량번호와 주소, 전화번호를 모두 암기하는 무서운 녀석이었다. 등굣길에 선생님 자동차 번호만 보고도 누구 차량인지, 어디에 사는지, 전화번호는 무엇인지까지 줄줄 말하는 학생이었다. 개인정보인데 어찌 알았을까? 알아보니, 형의 졸업앨범을 보고 모두 암기했던 것이다. 예전에는 졸업앨범에 선생님의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었다.

이 학생의 독특한 행동은 하나 더 있었다. 선이 그어져 있는 복도나 운동장을 걸어갈 때 절대 그 선을 밟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심 또 조심했음에도 실수로 선을 밟으면 소방차 사이렌 같은 소리를 내며 절규를 했다. 수업을 하다가 갑자기 이런 소리가 나면 "에고 000 이가 또 선을 밟았나 보다"하고 웃고 넘어갈 정도였다. 이 학생에게 있어서 복도의 선(금)은 자기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준이었다.  


기준(基準)은 기본이 되는 표준이다. 이 기준에 부합하면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이고, 부합하지 않으면 비범한 사람,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상한 젓가락질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다. 기준에 부합하는 젓가락질을 하려고 수없이 노력했어도 모두 허사였다. 이미 몸에 베인 습관은 고치기 어려웠다. 하지만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모습은 이상할지라도 좋아하는 반찬은 놓치지 않고 야무지게도 잘 잡았다. '이렇게 반찬만 잘 집으면 됐지? 젓가락질이 남들과 다르면 어때?'하고 스스로 위안했다.  




젓가락질을 고쳐야겠다고 다짐했다.


대학 때 사귄 여자친구와 자연스럽게 결혼을 약속했다. 그런데 어느날 단 한 번도 내 젓가락질에 대해 이상하다고 말한 적 없는 그녀는 처음으로 젓가락질을 고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구의 가족이 매우 보수적이어서 자칫 젓가락 하는 모습만 보고 나쁜 편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많이 당혹스러웠다. 20년 넘게 몸에 베인 젓가락질을 어떻게 하루 이틀 만에 바꿀 수 있을까 한숨만 나왔다. 담배는 끊을 수 있어도 젓가락질은 도저히 바꿀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젓가락질 하나로 첫인상을 나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딱 한 달만 노력해 보자.

함께 숙식하는 하숙생에게 기준에 맞는 젓가락질을 배운 후 반찬을 집는 연습을 했다. 연습한 반찬은 바로 깻잎과 콩자반이었다. 양념에 버물린 깻잎은 한 장 한 장씩 떼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것도 처음 시도하는 젓가락질로는 거의 불가능했다. 콩자반은 더 심했다. 미끌미끌한 콩자반을 집어 내 입까지 가져가는 것이 서울에서 부산 가는 것보다 더 멀게만 느껴졌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정말 한 달 동안 피나는 연습을 했더니, 드디어 20년 넘게 해온 젓가락질 습관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덤으로 몸무게도 3kg가량 빠졌다. 평생 해보지 않은 젓가락질로 반찬을 집어 먹었으니 식사량이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당시 여자친구도 설마 고칠 수 있을까 의심했는데 실제로 성공하는 나를 보고 많이 믿음직스러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젓가락질을 잘 고친 것 같다. 교장인 내가 급식실에서 학생들과 밥을 먹는데 이상한 젓가락질로 식사를 하면 폼이 조금 떨어지지 않았을까?


정말 무엇을 상상하더라도 예전의 내 젓가락질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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