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thos Oct 10. 2023

오늘부터 지하철로 출퇴근하기로 했습니다

오늘부터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지하철을 타면 가급적 자리에 앉지 않는다.

좁은 자리에서 옆 사람과 몸을 부대끼며 가는 것이 싫은 것도 아니고, 자리를 양보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것이 싫어서도 아니다.

이유는 딱 하나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출근하는 길의 한강을 온전히 보기 위해서다.

낮이 짧아지는 11월이 되면 퇴근길 한남대교 위에서 보는 해넘이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혀에서 녹듯 나의 고단한 하루를 위로해 준다. 한강을 지나는 불과 5초의 시간을 만나기 위해 나는 마치 부대에 면회올 애인을 온종일 애타게 기다리는 것처럼 퇴근시간을 기대한다.  



나는 지하철을 타면 가급적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노이즈캔슬링 잘 되는 에어팟을 귀에 꽂고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창가에 기대어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모든 사람이 핸드폰을 보고 있어 나만 유별나게 책을 읽는 척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책을 편히 읽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읽고 싶은 책을 보는 것이 좋은 것뿐이다. 오늘은 7년 전에 읽었던 신형철 작가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책장에서 다시 꺼냈다. 얼마 전 <인생의 역사>을 읽은 후 예전에 보았던 그의 책을 다시 보고 싶어서였다.


난, 말장난이나 언어유희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작가의 문장은 이런 유희나 어색함을 느끼지 않게 한다. 줄타기를 잘하는 작가.

책 겉장을 펼치지 그 옛날 내가 썼던 메모가 바로 눈에 띈다.



지하철 출입문에 기대어 책을 읽다가 문득 연관되는 생각들이 떠오르면 양복 안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어 줄을 긋고 예쁘지 않은 글씨체로 메모를 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책을 매우 거칠게 읽는다. 책을 중고로 팔 것도 아닌데 깨끗이 보는 내가 우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책 사이사이에 사고의 파편들을 불규칙적으로 기록한다. 생각들이 금방 사라지기 무섭게... 책을 다 읽은 후 그 파편들을 모아 하나의 형상으로 재구성한다. 때론 그럴듯한 형상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어울리지 않는 쇠붙이 로봇처럼 어색하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출근 시간을 피하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하고 늦지 않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하지만,

전철 창문 액자 사이로 펼쳐지는 붉은 노을의 향연을 볼 수 있고 매일 읽고 싶은 책을 만날 수 있는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기로 결정했다.





대문 이미지 출처 : https://blog.naver.com/good5229/223160872891

이전 03화 정말 결혼은 미친 짓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