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4주년을 자축하며...
1998년 12월 13일에 결혼했으니 오늘이 결혼기념일 24주년이다. 사실 만나기 시작한 날부터 헤아리면 30년이 되었다(24년+대학 4년+군대 2년). 20대 중반, 매우 이른 나이에 결혼한 셈이다. 22살에 결혼한 작은 아버지가 결혼 전날 농담 섞인 조언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00아! 왜 이렇게 결혼을 빨리 하니? 지금도 늦지 않았다. 내가 너보다 더 일찍 결혼해보니 결혼은 하지 않은 게 제일 좋고, 하더라도 최대한 늦게 해야 한단다."
그때는 작은 아버지 말씀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살아 보니 어떤 의미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것 같다. 나도 일찍 결혼하려고 하는 후배들을 보면 똑같은 말을 해주고 있는 걸 보면...
사랑은 변할까?
질문이 잘못됐다. 사랑은 변할까?가 아니라 '사람은 변할까?'가 맞다.
아내는 본인 것이 될 사물(또는 사람)을 선택할 때 몇 날 며칠을 비교하고 분석하고 또 고민하고 상상하는 성격을 지녔다. '이 물건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 '이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등등. 물건을 구입할 때 너무 심하게 고민해서 결국 필요한 물건을 못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이런 아내는 가끔
"내가 미쳤나 봐. 유일하게 아무런 고민(분석, 비교) 없이 선택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야!"
"내가 왜 당신과 결혼했는지 알아?, 나한테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존재여서 그런 거야"
이런 아내가 몇 년 전부터 내가 변했다고 슬퍼한다. 연애나 신혼 때와는 다르다고 화를 낸다.
아내에게 호감을 느낀 건 대학 1학년 때 첫 MT를 갔을 때였다.
캠프파이어를 하는데 곰이 그려진 상하복의 츄리닝을 입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그때 나는 과대표로 MT를 성공리에 마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심지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독창하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마 이때부터 이 여자를 내 여자로 만들지 않으면 늑대 같은 선배들이 가만히 나두지 않을 것 같은 위기감에 적극적인 구애를 했고 결국 비밀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부부의 연을 맺어 긴 시간 함께 살면 연애나 신혼 때와 달라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우리 부부는 조금 다르다. 말도 안 되는 비유지만 내가 아내를 대하는 모습은 마치 1991년에 개봉한 전지현, 차태현 주연의 '엽기적인 그녀'에서 견우가 그녀를 대하는 모습과 비슷했다고 하면 아마 다들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내가 생각해도 그 정도로 그녀인 지금의 아내를 대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런데 견우인 줄만 알았던 남편이 현실에선 견우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에 아내의 상실감은 매우 컸을 것이다. 견우로 살기엔 결혼 24년이 너무 긴 것 아닐까? 아마 견우도 그녀와 결혼해서 24년을 살았다면 변했을 것이라고 아내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내년이면 25주년 은혼식(silver wedding)이다.
그때와 다르지만 여전히 아내를 보면 설렌다. 매 순간은 아니어도 보면 심장도 쿵쿵 뛴다. 내가 영화 속 견우는 아니지만 아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정말 결혼은 미친 짓일까?
'응 미친 짓 맞다'
낯선 남녀가 만나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세월을 함께 해야 하고
낯선 남녀 사이에 생긴 자식을 함께 키워야 하고
낯선 양가 집안을 함께 챙겨야 하고
이 험난한 세상을 둘이 함께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낯선 관계맺음에 힘겨워하지 않고 둘이 함께 사랑의 감정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자신(?)이 있다면 미친 결혼은 해도 된다고 본다.
사실 정답은 없다.
결혼한 사람은 각자 결혼생활의 만족도로 결혼이 미친 짓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