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금단증상
brunch+ache : 글감이 시도때도 없이 떠올라 감기를 앓듯 브런치에 빠져듦
brunchache라는 단어를 검색했는데 이런 단어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신조어를 만들었다.
일명 '브런치앓이(브런체이크)' ...
"아! 미치겠네, 드디어 잠이 들려고 하는데 왜 갑자기 쓰고 싶은 내용들이 자꾸 생각나는 거냐고!"
"어쩌지? 지금 떠오르는 내용들을 핸드폰에 저장하자니 가까스로 찾아온 잠이 달아날 것 같고, 일어나지 않고 그냥 잠에 들자니 머리 속에 마구 쏟구치는 글감들이 아침이면 생각나지 않을 것 같고..."
대학 신입생 때 선배를 따라 당구장에 처음 갔다.
지금이야 당구가 건전한 스포츠로 인정되어 중고등학생도 갈 수 있지만, 라테만 해도 당구장은 청소년 금지 장소였다.
아무튼 대학생이 되어 처음 가 본 당구장은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입에 담배를 문 채 양손으로 큐대를 잡고 한 쪽 눈을 지긋이 감으면서 흰 공으로 빨간 공을 때리는 선배의 모습은 정말 멋짐 그 자체였다.
한쪽 눈을 감은 이유가 담배연기 때문이란 사실을 한 참 후에 알았다.
그날 이후 난 심한 당구앓이를 겪었다.
둥글게 생긴 물체가 어떤 식으로든 모여있으면 소위 '당구길'을 상상했다.
"이 흰 공으로 저쪽에 있는 빨간 공을 때리면 다른 쪽에 있는 빨간 공을 맞출 수 있겠지!"
급기야는 강의실에서 내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머리가 당구공으로 보이기까지했다.
그렇다.
얼마 전부터 앓고 있는 '브런치앓이'는 이제 갓 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 홍역을 치렀던 '당구앓이'와 같았다(브런치앓이=당구앓이).
그때 그 시절 둥글게 생긴 사물만 보면 무의식적으로 당구공이 떠오른 것처럼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사소한 모든 것들이 브런치에 남길 글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식당에서 뜨거운 국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볼 때도
집에 가는 길 꽉 막히는 고속도로 위의 자동차 안에서도
업무로 부장들과 기획회의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드디어 얼마 전부터는,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올려는 찰나 갑자기 브런치에 쓰고 싶은 글감이 머리속을 맴맴 도는 상황이 며칠 째 지속되고 있다.
가끔 아내가 "당신은 퇴직 후에 뭘 하면서 지낼꺼야?"라고 물으면
난 "글을 쓰는 작가의 삶을 살 거야"라고 말한다.
그럼, 아내는 "돈 되는 일을 해야지 글을 쓰면서 돈을 어떻게 벌어?"라고 농을 친다.
진심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이 오래 전부터 생겼다.
지금까지의 글은 주로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학술지에 등재될 논문들만 썼다.
심사위원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기 위한 글.
늦었지만,
이렇게 찾아온 브런치앓이가 싫지 않다.
쓰고 싶은 글을 행복하게 쓰고
더불어 이 글이 누군가에 공감과 위로를 주는 것.
이게 진정 퇴직 후에 꿈꾸는 나의 삶이다.
이 앓이가 영원히 치유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