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세대 교사에 대응하는 꼰대 교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학부모 총회를 대면으로 진행하였고, 얼마 후 새로 전입온 교직원에 대한 환영회도 열었다. 오랜만에 공식적인 회식을 해서인지 선생님들은 살짝 기대를 하는 눈치였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나도 작년에 첫 교감으로 부임하여 제대로 된 환영식을 받지 못한 터라 은근히 이날을 기다려왔다.
드디어 전교직원 회식 날이 다가왔다.
나는 즐거운 회식을 만들기 위해 체면 불고 하고 이런 메시지까지 보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장소에 교장, 교감이 미리 가 있으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후 5시가 다 될 무렵에 식당으로 들어갔다. 학생들과 매일 씨름하며 찡그린 얼굴만 보다가 오랜만에 선생님들의 깔깔 웃는 모습을 보니 나 또한 행복했다. 앞으로 자주 이런 자리를 만들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런데 자리 배치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장, 교감 맞은 편에는 상조회장과 교무부장만 앉아 있었고, 경력 교사들은 교감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아 있었으며 마지못해 우리와 가까운 자리에 앉은 저경력 교사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건 뭐지? 이렇게도 우리가 싫은가?
이해를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이날만큼은 교장, 교감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맘에 맞는 사람들과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 또한 교사 시절 그랬으니까. 그렇더라도 막상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 또한 내가 감당해야 할 운명인 것인가? ( ᵕ ᵕ̩̩ )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회식 시작한 지 1시간 정도 지나니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하나둘씩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아 그래 금요일 저녁이니까 다들 빨리 집에 가고 싶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모두 떠나고 교장과 교감 그리고 몇몇 부장교사와 함께 인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후 집에 갔다. 많은 기대를 가졌던 회식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 아쉬웠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
집에 가는 길에 우리 학교 젊은 선생님들이 즐겁게 수다 떠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한두 명이 아니라 거의 20명이 넘었고 보아하니 2차를 끝내고 3차를 가려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배신감이 큰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저녁 12시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것들아 나도 너희들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나만의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있었거든, 까불지 마!"
첫 번째 화양연화는 단연코 교실실습 시절이다.
어찌하다 보니 000 여고에 교생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그 학교 출신도 아닌 내가 당당하게 교장실에 찾아가 '이 학교에서 꼭 교생실습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는데 그 패기가 가상했는지 교장선생님이 허락해 주셨다. 아마도 그래도 낭만이 있었던 90년대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4주 간의 교생실습은 정말 꿈속을 거니는 것 같았다.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 교사가 10대 여고생들을 가르쳤으니 그냥 '게임오버'였다.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리가 만무했고 내가 말만 하면 "선생님 첫 키스는 언제 했어요?", "선생님 여자 친구 있어요?"라는 호기심 가득한 질문만 했다. 2주 차 실습 때는 3단짜리 도시락을 주는 여학생도 있었다. 지금 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학습분위기 망친다고 엄청난 민원이 제기될 일이 그 당시 내게 일어났다. 결국 교실실습 마지막 날에 학교에 출근하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여학생들이 송별회 준비한다고 며칠 전부터 난리가 났다며 담당선생님이 미안하다며 출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화가 왔었다.
두 번째 화양연화는 고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 시절이다.
자칭 입시지도의 베테랑 교사라는 입소문이 나서 학부모에게 인기가 많았다. 내가 자녀의 담임으로 배정을 받으면 학부모들이 좋아했다(좋아했던 것 같다).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많았던 것 같다). 그 재미없는 공자와 맹자, 칸트와 헤겔 사상을 눈높이에 맞춰 재미있게 수업을 했다. 급기야는 지금도 잘 나가는 사설 입시기관에서 나를 스카우트하겠다는 메일까지 보냈었다. 아마 그때 학교를 그만두고 사설학원에 진출했으면 일타강사 이지영이 아니라 일타강사 000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술 마실 때마다 자랑삼아 이야기하곤 한다.
이런 날도 있었다.
내 생일날 졸업한 제자가 찾아와서 인근 카페에서 잠시 차를 마시는 데 부장선생님이 빨리 학교로 오라고 해서 가봤더니, 우리 반 아이들이 야자 시간에 몰래 운동장에 나가 양초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마지막 화양연화는 30대 중반의 학생부장 시절이다.
ISFJ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학생부장을 맡으면서 역할 수행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교칙을 밥 먹듯 어기는 학생들에게 학생부 부장이 연약한 존재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항상 인상을 썼고 부드러운 말보다는 엄포성의 과한 언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연말에 학교축제가 있었다.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도 축제에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의 권유에 학교에서 제일 키가 크고 인기가 많은 여선생님과 함께 당시 유행했던 백지영과 옥택연의 '내 귀의 캔디'를 아무도 모르게 연습하여 무대에 나갔다.
충격적인 사실은 학생부장인 내가 백지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망사스타킹을 신고 화장을 한 얼굴로 무대에 섰을 때의 반응은 그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그 이상이었다. 열광적인 반응에 두 번이나 무대에 섰으며 학생들이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바람에 삭제하느라(삭제를 요청하느라) 한참 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장황하게 교사 시절 화양연화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지천명의 나이 오십 대도, 관리자인 교감도 젊은 세대들과 어울릴 수 있고 그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삶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꼰대라며 싫어할 수도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들도 내 나이가 되면 꼰대 소리를 원하지 않아도 듣게 된다.
젊은 세대와 늙은 세대(젊은 세대의 상반된 개념을 못 찾음)를 구별하는 기준은 물리적인 나이가 아니라 사고방식과 가치관에서 비롯된 말과 행동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말 그대로 꼰대 같은 사고와 행동을 하더라도 AI 시대, 쳇 GPT 시대에 그래도 중요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젊은 세대와 꼰대라 불리는 나이 든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시간과 공간을 꿈꿔본다.
그때보다 더 찬란한 오십 대의 화양연화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힘차게 글을 쓴다.
추신 : 그들이 2차 모임에 교감을 끼워주지 않아서 이런 감정적인 글을 쓴 것은 절대 아님을 굳이 밝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