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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Sep 14. 2023

커피를 마시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가 독한 남자인 첫 번째 이유


커피를 끊었다.





2011년 박사학위 최종 논문심사를 준비하기 위해 아내에게 육아와 돈벌이를 전담시키고 휴직을 단행했다. 굳은 결심이었다. 이런 과감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학위를 따지 못 할 것 같은 나만의 냉정한 결단이었다.  언제나 내 선택을 존중해 주는 아내는 말없이 따라 주었다.


그런데 유난히도 추운 그해 겨울 어느 날, 최종 심사에서 교수님 한 분이 논문에 논리적 결함이 있으니 보완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설마 6년을 준비하고 올해 휴직까지 한 사람을 통과시켜 주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심사를 마친 후 지도교수님이 연구실로 불렀다. 나는 이만하면 박사로서 충분하다는 교수님의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듣겠지 하는 기대를 갖고 연구실에 갔다.


"윤 선생님! 지금 말고 다음에 한 번 더 최종심사를 받으면 어떨까 합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교수님의 말에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애써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순간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공부했던 6년의 힘든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무엇보다 경제와 육아를 전담한 아내를 볼 면목이 없었다.


"네 교수님. 잘 알겠습니다. 심사위원 교수님들이 말씀하신 부분 반영하여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나는 교수님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드럽게 말을 전한 교수님이지만 한 번 결정한 것을 번복하지 않는 완고한 성품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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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무너질 듯한 절망감에 연구실을 나오자마자 10년 전에 끊었던 흡연 욕구가 온몸 가득 퍼졌다.

하지만 내가 찾은 것은 담배가 아닌 커피였다.


나는 테이블 몇 개 없는 작은 카페에서 처음 마신 그날의 커피, 아메리카노를 잊을 수 없다. 이때부터 커피는 내 삶의 활력소이자 각성재가 되었고, 제일 좋아하는 '뜨거운 물에 커피 불릴 때 나는 소리'를 들으며 12년을 동거동락했다.

발행글 : 첫 물에 커피 불릴 때 나는 소리(https://brunch.co.kr/@yoonteacher/151)

'커피' 그 존재 자체가 주는 황홀함은 내 부족한 문장력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커피가 주는 황홀함은 '이번에는 어떤 원두를 살까?'부터 시작된다.


첫사랑을 만나듯 설레는 마음으로 원두를 고르고,

개심사 가는 길 느꼈던 그 정갈한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원두를 분쇄하고,

좋아하는 색깔인 연보라색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종이를 접어달라는 사랑스러운 딸의 부탁인 양 커피 필터를 고이 접고,

비 갠 뒤 초가집 처마 끝에서 똑. 똑.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조심스레 물을 내리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뽈록 부풀어 오르는 찐빵처럼 30초간 숨죽이며 뜸을 들이고,

열대과일 향인지 아니면 초콜릿 향인지 또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산 탈라몬티 모다 와인 향인지, 그 알 수 없는 커피 향에 취하고,

첫 여인과의 달콤한 키스처럼 커피와 내 입술이 닿을 때의 그 촉감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제주도 어느 카페에서




이런 커피를 마시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심각한 불면증 때문이다.


발행글 : 불면증(https://brunch.co.kr/@yoonteacher/365)


불면증을 고치기 위해 수면제만 먹지 않았을 뿐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했다. 병원에서 수면유도제도 처방해서 먹어 봤고, 격렬한 운동이 도움이 된다고 해서 작년부터 수영을 다니고 있다. 잠이 잘 오는 이불, 베개 등. 급기야는 결혼 후 한 번도 떨어져 잔 적이 없는 우리 부부는 침대를 따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잠이 보약인데,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나의 하루는 엉망이 되었다. 말 그대로 정신력으로 버텼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자기가 이렇게 잠을 못 자고 괴로워하는 시기가 박사학위 떨어질 때부터였던 것 같아. 그리고 그때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고..."


"말도 안 돼. 그럼 커피 소비량이 세계 2위인 커피 공화국인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게"

나는 아내가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기 위한 속셈임을 간파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분명 그 시기부터 불면증으로 힘들어했다. 그 이후 나는 커피를 적게는 하루 세 잔, 많게는 다섯 잔까지 마셨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럼 일주일만 커피를 끊어볼까?" 생각하고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자기는 결정하면 냉정하리만큼 실천에 잘 옮기는 사람이니까, 한 번 커피를 마시지 말아 봐"

아내는 당분간 내가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는 말에 신이 나서 나의 독한 실천력을 강조하며 말했다.


그랬더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말 그대로 백약이 무효였는데, 커피를 마시지 않자 조금씩 잠이 드는 시간이 빨라졌고 중간에 깨도 곧바로 잠이 들었다. 거의 10년 만에 느껴보는 아침의 개운함을 아주 조금씩 느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날카로운 면이 사라졌으며 즐겁고 행복하게 일을 했다. 동료들이 출근할 때 표정이 밝아졌다는 말도 들었다.


이제 커피를 다시 마실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스타벅스의 '제주 유기능 말차 라테'가 이리도 달콤한 줄 처음 알았다.

물론 건강에는 조금 좋지 않겠지만, 잠을 못 자는 것보다 낫다.


유기능 말차 라테도 맛있다.



내가 독한 남자인 두 번째 이유 comming s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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