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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Feb 06. 2024

설날에 고향에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머니, 이번 설은 못 내려갈 것 같아요."

"워째야?"

"연휴가 너무 짧아서요. 대신 동생들은 갈 거예요."

"그라제. 이번에는 너무 짧드라야. 그라믄 이번에는 오지 말고 거기서 푹 쉬어라"




아내와 상의 끝에 이번 설날에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가지 않기로 했다.

임용시험 준비할 때를 제외하고 명절 때 고향에 안 간 적이 없었다. 어릴 적에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 짧게는 9시간, 길게는 13시간 이상 걸리는 고향행 버스를 탔었다. 오십 줄에 접어든 지금은 친구보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꽉 막힌 서해안 고속도로를 탄다.

바다 물때표가 적힌 달력을 보며 오매불망 큰아들이 오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이 눈에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가지 않는다고 하니 어머니의 목소리에 기운이 없다. 동생들은 간다고 했지만 옛날 분이신(?) 어머니는 큰아들이 오지 않아서 성에 차지 않는가 보다. 힘 없는 목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도 좋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내려가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다.

어머니의 몸 상태가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인데 손녀를 데리고 큰아들이 시골에 가면 어머니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게 뻔하다. 아무리 가만히 계시라고 해도 소용없다. '알겠다'라고 대답만 할 뿐 바닷 일을 오래 해서 성한 데 하나 없는 손은 이미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을 손질하고 있을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명절에 부모님만 계시면 안 되니 동생들은 가기로 한 것이다.  




고향의 상차림은 밥과 김치만 빼고 모두 바다에서 나는 것들이다.

갯벌에서 잡은 세발 낙지를 칼로 잘라 그 위에 참기름과 소금을 뿌린 낙지탕탕이, 냉동실에서 싱싱한 삼치를 꺼내 얇게 포를 떠 고춧가루, 간장, 마늘, 파, 참기름으로 만든 소스에 찍어 먹는 삼치회, 버터를 발라 프라이팬에 구워 먹는 전복과 간장에 절인 전복장아찌, 주먹만 한 돌게를 사등분해 달콤한 양념에 버무린 양념돌게무침, 갯장어 하모를 잘게 포를 떠서 소스에 찍어 먹는 하모회와 얼큰한 갯장어탕 등등등.




명절 때 잠깐 왔다가는 불효자를 위해 일 년 내내 싱싱한 해산물을 내동실에 넣어 놓고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내놓은 어머니의 음식들이 그립지만, 이번 설은 어머니가 무리하지 않도록 가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 조만간 수술할  때 그토록 그리운 아들이 찾아갈게요. 그러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대문 이미지 출처 : https://blog.naver.com/kmakhy6453/40205745973

음식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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