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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Feb 08. 2024

더 이상 손흥민의 눈물을 보고 싶지 않다.

손흥민과 클린스만의 리더십

나는 축구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운동장에서 실제 축구를 하지 않지만 축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부류는 좋아하는 선수와 클럽의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내 남동생은 땀 흘리며 뛰는 운동을 싫어하지만 축구 경기를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특히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명문클럽인 리버풀을 좋아하는데, 리버풀의 역사와 선수들의 프로필을 모두 알고 있을 정도다. 한 마디로 리버풀에 관해서는 살아있는 위키백과사전이다.

또 다른 부류는 필드에 나가 축구화를 신고 선수들과 함께 땀 흘리며 실제 경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축구 경기 보는 것도 좋아한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주말만 되면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아침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축구를 했다. 어머니가 "순진아 밥 먹어라"라는 말을 열 번 정도 해야 축구를 그만둘 정도였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반별 축구시합에서 우리 팀이 결승에 올라갔다. 어머니는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공을 차는 아들이 안쓰러웠는지 5일장에 나가 검정색 줄이 4개 그려진 아다다스(아디다스 짝퉁) 축구화를 사주셨다. 이 귀한 축구화를 신고 내가 결승골까지 넣었다. 나이 오십 인 지금까지 마치 엊그제 일인 것처럼 기억이 생생하다.


이십 대 중반에 남자 고등학교의 교사가 됐다. 우리 반 아이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담임을 닮았는지 10분의 쉬는 시간과 50분의 점심시간이면 무조건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찼다. 공부를 축구처럼 했으면 우리 반 아이들은 아마 모두 서울대에 합격했을 것이다. 또한 나는 학생들과 축구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동아리명이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자는 '축생축사'였다. 어릴 적 내가 그랬듯이 주말이면 이 녀석들을 데리고 인근 학교와 축구시합을 했다. 주말이면 학원에 가야 하는 지금의 교육현실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낭만이 있었다.




축구인이라면 누구나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황희찬이 이끄는 대한민국이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염원했을 것이다. 나 또한 이번만큼은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우리의 아시안컵 여정은 여기까지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로 이렇게 손에 땀을 쥐고 축구를 본 게 너무 오랜만이어서 행복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과는 그 행복의 수준이 많이 달랐다. 2002년 월드컵은 히딩크 감독의 확고한 축구철학과 리더십 아래 우리 태극전사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있었다면 이번 아시안컵은 태극전사들의 고군분투의 노력은 있었지만 클린스만 감독의 축구철학과 리더십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4년 동안 욕을 먹으면서도 빌드업 축구를 고집했던 파울루 벤투 감독의 뚝심과 철학도 없었고, 조별예선에서 만난 요르단에 대한 대비도 전혀 없었다. 실점을 당하고 한참 후에 선수를 교체하거나 토트넘의 명감독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주제 무리뉴, 안토니오 콘테 지금의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처럼 경기 중에 골을 넣었거나 실점을 했을 때의 치열한 리엑션도 없었다. 당연히 이기고자 하는 전술도 전무했다.


내가 가장 화가 나는 지점은 준결승에서 요르단에 졌을 때의 클린스만 감독의 태도이다.

한 조직이나 집단의 리더라면 응당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져야 마땅하다. 그래야 직원들이나 선수들이 마음 놓고 자기 기량을 펼칠 수 있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아쉽게도 '결과에 대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으니 선수들을 비난하지 말아 달라'는 리더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주장인 손흥민이 눈물을 삼키며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 되풀이했다. 누가 봐도 손흥민은 몸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아마 손흥민과 다른 선수들의 능력이 수준급이 아니었다면 조별예선에서 이미 탈락했을 것이 분명하다.


축구와 같은 단체 경기는 감독의 리더십이 절대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손흥민의 토트넘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동일한 선수진임에도 현 토트넘의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다른 결과를 내고 있다. 하물며 영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공격수 케인(현 김민재와 같은 클럽인 바이에른 뮌헨 소속)도 없는 상황에서도.


아시안컵 조별 예선이 있기 전에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 씨가 했던 말이 지금의 우리나라 축구 현실을 가장 잘 대변한 것 같다. 뼛 속까지 축구인인 사람으로서 다시는 우리에게 이런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길 바란다. 매 경기를 이겨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지더라도 우리만의 축구철학과 스타일을 유지해 달라는 바람이다.  


"냉정히 말해 한국 축구 미래를 생각한다면 아시안컵 본선에서 우승해선 안 된다. 한국은 일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지난 64년간 (아시안컵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에 대해 나를 포함한 우리 축구인이 반성해야 한다. 실력과 투자 등 모든 면에서 일본에 뒤지는 상황에서 우승하는 게 오히려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우승을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이렇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우승해 버리면 그 결과에 도취해(변화를 등한시한 채) 얼마나 또 우려먹겠냐. 그러나 한국 축구가 병들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https://m.sports.naver.com/video/1146135


https://mydaily.co.kr/page/view/202402080731012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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