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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Mar 21. 2024

전등도 못 가는 남자이야기

똥손 남편 거실 LED등 교체기

아내의 푸념

나는 자타공인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다. 시쳇말로 '똥손'을 가진 남자이다.

아내는 이런 내게 불만이 많다. 간단한 가전제품 수리나 전등 교체, 벽에 못을 박는 등 보통의 남자라면 대부분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조차도 못하는 남편을 안타깝게 여긴다. "어떤 남자는 혼자 시골에 집도 짓는 다는데 우리 집 남자는 뭐가 고장 나면 무조건 철물점 아저씨를 불러야 하니..."라고 푸념한다.


거실 LED등 고장

몇 주 전부터 거실 LED등이 고장 나 밤마다 암흑 속에서 지내고 있다.

아내는 '당연히 우리 집 남자는 고치지 못할 테니 비싼 돈을 주고 사람을 불러야겠다.'라고 투덜댔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똥손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기고, 아내에게 '내가 고칠 테니 몇 일 시간을 주라'라고 호언장담을 하였다. 아내는 '내가 자기를 뭘 믿고 맡기느냐'라고 하면서 '작년 화장실 환풍기 교체 사건'을 벌써 다 잊었냐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화장실 환풍기 폭발 사건

작년에 화장실 환풍기가 고장이 난 일이 있었다.

아내는 동네 철물점 사장님을 불러 환풍기를 교체해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환풍기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라며 인터넷으로 환풍기를 구매한 후 직접 교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내는 평소와는 달리 반신반의하면서도 '그럼 이번엔 자기가 교체해 봐'라고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인터넷으로 구매한 환풍기가 배달된 그날 저녁, 나는 아내와 함께 환풍기 교체 작업을 시작하였다. 고장 난 환풍기를 뜯어내고 새 환풍기를 화장실 천장에 매립했다. 생각보다 너무 쉬워 내 어깨는 불쑥 올라가 있었다. 아내의 표정도 나쁘지 않았다. 마치 '어 이 남자 제법 솜씨가 좋은데'라는 표정이었다.

이제 전선 두 개만 천장의 전선과 연결만 하면 되었다. 빨간색 전선을 연결하려는 찰나 '파파박' 빨간 불꽃이 일어나더니 '퍽'하는 굉음이 나면서 전선 타는 냄새가 화장실에 가득했다. 나와 아내는 너무 놀라 뒤로 자빠졌다. 두꺼비집의 전원을 차단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였고 더 큰 문제는 환풍기의 빨간 전선은 천장의 빨간 선과 연결해야 했는데 똥손인 나는 빨간 선과 흰색 선을 연결한 것이었다.

그날 이후 아내는 나의 대한 불신이 더 커졌다.


거실 LED등 자가 교체 시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거실의 LED등을 교체한다고 하니 아내는 절대 믿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이야말로 땅에 떨어진 나의 명예(?)를 회복할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여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아내는 당신이 직접 교체하면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면서 이번 주말에 사람을 불러 교체하자고 하였다. 유튜브에는 LED 모듈만 교체하면 되고 3분도 걸리지 않으며 여자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영상이 수두룩하였다. 나는 아내 몰래 LED 모듈을 인터넷으로 구입한 후 아내가 저녁 약속이 있는 날만 기다렸다.


드디어 아내가 약속이 있어 늦게 오는 날이 생겼다.

아무리 쉬워도 나 혼자는 교체할 수 없으니 아무 죄 없는 딸을 조수로 꼬드겨 전등 교체 작업을 시작하였다. 딸은 엄청 불안해하면서도 그동안 엄마에게 구박받은 아빠의 자존심을 세울 절호의 기회임을 직감하였는지 별다른 불평 없이 전등 교체 작업을 도와주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틀어놓고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유튜브의 LED모듈과 내가 산 모듈이 달랐으며 더 큰 문제는 전등 전체를 뜯어내야 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똥손 이미지는 죽을 때까지 뗄 수 없다는 간절함에 전등 전체를 뜯어내고 작업을 시작하였다. LED 모듈을 자석으로 붙이고 모듈끼리 선을 연결한 후 천장에 다시 달았다. 이 간단한 작업을 하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마에는 땀이 줄줄 흘렀다. 이제 곧 아내가 도착할 시간이었다. 긴박하고 초초한 마음에 내 손을 빨라졌다. 사실은 손은 전혀 빨라질 수 없었고 내 심장 박동 소리만 더 크게 요동쳤다.

드디어 천장에 있는 전선만 연결하면 되었다.


갑작스런 아내의 등장

나는 작년 화장실 환풍기 사건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같은 색의 전선끼리 연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하필 마지막 전선 연결 작업을 하려는 찰나 아내가 집에 돌아온 것이다. 나는 이때까지 장장 3시간을 전등 교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 계획은 '짜자잔~" 하면서 아내가 환한 거실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아내는 예상보다 일찍 온 것이다. 차라리 잘 된 것이라 위안했다. 마지막 전선을 연결하고 두꺼비집에서 전원을 켰을 때 불이 환하게 되는 극적인 장면을 아내와 함께 볼 수 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전등과 각종 도구들을 본 아내는 눈의 휘둥그래 해졌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했는지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전선을 연결한 후 전원을 ON 하는 순간만 남았다.

함께 날 도와준 딸은 전등이 켜지지도 않았는데도 감격스러웠는지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도 매우 초초해하고 있었다. '이제 나의 똥손의 역사는 이것으로 막을 내리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전원스위치를 켰다.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껐다가 다시 켰다. 우리 가족의 마음에는 여전히 깜깜한 어둠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내가 뭐라고 했어? 그러니까 사람을 부르자고 했어? 안 했어?"

아내는 참았던 화를 내뿜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이상하다. 유튜브에서 하라는 대로 했는데...'하고 중얼거렸다.

아내는 저녁 9시에 관리실에 전화를 했다. 남편이 거실등을 교체하려고 했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불이 안 켜진다. 그리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아내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넘어갔는지 늦은 저녁에도 관리소 아저씨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아저씨는 전선을 이리저리 연결해 보았고 잠시 후에 마법처럼 거실등이 드디어 환하게 켜졌다.  내가 무려 3시간 동안 끙끙거렸음에도 교체하지 못한 전등을 아저씨는 단 5분 만에 우리 거실을 밝게 만들어 주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저씨가 집을 나가면서 '저는 단지 전선을 다시 연결했을 뿐이에요. 남편분이 거의 다 하신 거예요."라고 말한 것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아내는 내가 아니라 관리소 아저씨가 전등을 교체한 것으로 인식했다.  

이렇게 나의 깜짝쇼는 허무하게 끝이 났고 똥손 이미지는 여전히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똥손인 이유

나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똥손인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와 함께 한 시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중동에 나가 외화를 벌었다. 지금의 우리 경제가 이만큼 성장한 것은 젊은 시절 당신의 피와 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우리 아버지는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문제는 아버지가 국가경제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시느라 정작 나와 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때 귀국하셨는데 나는 그때 도시로 유학을 가서 함께 살지 못했다. 이런 연유로 나는 아버지에게 배워야 할 남자로서의 생활의 지혜를 배우지 못 했다. 하지만 이 또한 핑계인 것 같다. 아버지는 바닷일을 프로답게 매우 잘하시는 데, 정작 집안일은 나와 마찬가지로 똥손이라고 어머니는 볼 때마다 한탄하신다.




나의 꿈

내 꿈은 퇴직 후 농촌에 사는 것이다.

시골 전원주택에서 자그마한 텃밭에 배추, 감자, 고구마 등을 키우며 편안하게 사는 것이다. 아내는 이런 나의 소망에 찬물을 끼 얻는다. 나처럼 똥손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농촌에 살 수 없다고 하면서 전원생활을 즐기려면 웬만한 것은 알아서 척척 고치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을 만들기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 하는 나는 시골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퇴직 후 진짜 시골에 살고 싶으면 당신 혼자 가라는 말도 한다. 

나는 속으로 외친다. '하하 그건 나도 바라는 바인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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