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thos Apr 09. 2024

학생에게 예쁜 손편지를 받았어요.

"교장은 교무를 통할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 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 제1항에 명시된 학교장의 직무입니다. 리더로서의 교장이 법령에 명시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육공동체와의 소통이 가장 중요합니다. 교장이 아무리 훌륭한 교육철학을 갖고 있더라도 학생, 교사, 학부모와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습니다. 많은 교장은 '교장실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다'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교장실에 들어가길 꺼려하고 교장과 대화하기를 어려워한다면 정치인들이 선거철에만 남발하는 정치 구호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3월 초에 신입생을 대상으로 교장실에서 수업을 했습니다.

새로운 친구, 선생님과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 아무래도 교장이 직접 아이들을 만나 짧은 시간이지만 이야기 나누면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https://brunch.co.kr/@yoonteacher/543




얼마 전에 신입생 한 명이 교장실에 들어와 예쁜 손편지를 제게 주고 갔습니다.

휴대폰으로 짧은 문자나 카톡만 보내고 긴 단어는 줄여서 쓰는 초 MZ 세대가 이렇게 정성스러운 손편지를 써주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몇 번을 읽으면서 저도 답장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못 쓰는 글씨지만 만년필로 또박또박 글을 써서 편지를 건네주었습니다. 학생이 졸업 때까지 멋진 학교생활을 해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요.


학생이 제게 건네준 손편지입니다.


신입생이 교장인 저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저는 이렇게 답장을 해주었습니다.



혜교(가명)에게


오전 내내 황사 낀 하늘이 원망스러웠는데 예쁜 편지를 들고 들어온 너의 모습이 마치 비가 그친 뒤 비추는 햇살처럼 따스하게 느껴졌단다. 그리고 네 미소처럼 또박또박 한 글자 한 글자 예쁘게 눌러쓴 편지글을 보니 선생님 마음이 너무 행복했단다. 선생님은 혜교가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편지를 이렇게 알차게 채웠을까를 생각하며 네가 쓴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단다.


교장실 수업이 혜교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단다. 같은 말을 들어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단다. 혜교처럼 선생님이 한 말을 메모하고 기억하려고 하는 사람은 분명 졸업할 때 네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갔을 거라 믿는단다.


학교의 '홈베이스' 명칭을 '본루'로 바꿨으면 한다고 제안했지? 어쩜 교장선생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 깜짝 놀랐단다. 선생님도 예쁜 한글 명칭도 있을 텐데 왜 영어를 사용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선생님이 알아보니, 홈베이스란 명칭은 고교학점제를 실시하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 공간을 부르는 명칭으로 공식적인 건축용어라고 하더구나. 그리고 우리 학교가 공간재구성을 하기 전에 학생, 학부모,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수차례 의논을 하여 공간의 명칭과 디자인을 설계했다는 사실도 알았단다. 지금 당장은 명칭을 바꾸긴 어렵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혜교의 의견을 참고하겠다고 꼭 약속하마.


고1 학생이 미적분 문제를 푸는 것이 못마땅했나 보구나. ^^ 보기에 따라 혜교처럼 좋지 않게 볼 수도 있지만 공부를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니 이것을 강제로 막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조심스럽구나.


혜교 말처럼 선생님은 항상 지금 보다 더 좋은 000고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단다. 혜교도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성장한 혜교가 될 수 있도록 지금처럼 열심히 학교생활하길 바란다.


좋은 의견을 제안해 줘서 너무 고맙고,

항상 즐겁고 행복한 학교 생활이 되길 바란다.


교장 선생님이 혜교에게.

이전 02화 MZ 교장의 학생 민원 전달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