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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Mar 31. 2024

MZ 교장, 새로 온 선생님을 환영하는 방법

지난 금요일에 전입 교직원 환영회가 있었습니다.

더 빨리 환영식을 했더라면 낯선 곳에 온 선생님들이 적응을 더 수월히 했을 텐데 학교의 3월은 가장 바쁜 시기라 학부모총회가 끝난 이후에 날을 잡았습니다.

환영회 전날 복도에서 만난 상조회 회장이 교장인 제게 환영사를 부탁했습니다. 기꺼이 하겠다고 했으나 쉽지 않았습니다. 즐겁고 기쁜 날에 존재 자체만으로 껄끄러운 교장이 분위기를 망칠까 봐 걱정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쓸데없는 긴 말은 필요 없을 테고, 자칫 학생들을 운동장에 세워놓고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말을 늘려놓는 교장의 훈화가 되지 않을까 우려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고생 많았다. 수고하셨다.' 등의 해야 할 말은 해야 할 듯싶어 아주 간단한 환영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나름 MZ 세대 교장인데 임팩트 있고 감동적인 환영 이벤트는 뭐 없을까 고민하다가 새로 전입온 교직원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보고 이름을 불러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기 초에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다 외워 지나갈 때마다 불러주면 좋아하는 학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전입 직원의 얼굴과 이름을 외워 불러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를 극복해야 했습니다.

이번에 새로 온 전입 교직원이 무려 30명이나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칭 안면인식장애를 갖고 있던 나는 교사 시절에도 반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는데 꽤나 애를 먹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3주는 넘게 걸렸습니다.

10명도 아니고 무려 30명 가까이 되는 성인의 이름과 얼굴을 외우기 것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선생님과 직원들을 자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담임교사는 언제든지 학생을 불러 얼굴을 볼 수 있지만 거의 교장실에 있는 나는 가끔 구두 보고를 하러 온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자주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교장실에 들어오면 업무 이외에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얼굴을 익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른 난관은 얼굴과 이름을 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교직원 사진첩의 얼굴을 보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또한 선생님들의 사진이 최신 거가 아니라 아주 오래된 사진이 대부분입니다. 심지어는 초임 시절 사진도 있어 도저히 지금의 모습을 떠올리기 불가능한 사진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름과 얼굴도 비슷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성만 다를 뿐 현주라는 이름이 4명이나 있었습니다. 수업하는 교사뿐만 아니라 시설직과 급식실 직원까지 얼굴과 이름을 익혀 환영회 때 얼굴을 보며 이름을 불러주리라는 나만의 이벤트는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헛된 꿈같이 여겨졌습니다.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10명 정도는 이름을 알고 있으니 20명만 외우면 된다는 희망을 갖고 하루 반나절동안 노력했습니다. 먼저 핸드폰에 사진첩 파일을 저장한 뒤 지나다니다가 전입 선생님이 계시면 얼른 휴대폰의 사진과 현실의 모습을 매칭시킨 후 이름을 외웠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선생님 앞에서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현주 국어 선생님, 오늘 날씨 참 좋습니다."라고요. 점심시간에는 교감 선생님께 저분이 김현주 수학 선생님 맞냐고 물어보면서 얼굴을 익혔습니다. 이렇게 노력한 덕분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름을 다 외울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인근 식당에서 환영회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자리에 앉은 순간 저는 당황했습니다. 과목순으로 선생님의 이름을 익혔는데, 선생님의 자리 배치는 학년부와 부서별로 앉아있었던 것입니다. 머리가 하얗게 됐지만 선생님의 뒷모습만 보고 다시금 얼굴과 이름을 떠올리며 외웠습니다.


"다음은 본교 교장선생님께서 새로 오신 교직원을 위해 환영사를 해주시겠습니다."

상조회 회장은 저에게 환영사를 부탁했습니다.


"이 시대에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은 과거에 비해 더 커졌는데, 교사로서의 자존심과 긍지는 가면 갈수록 땅에 닿을 듯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저는 작은 학교의 교장일 뿐이지만 우리 선생님들이 저와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즐겁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들이 보람과 긍지를 갖고 마음껏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드리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정성으로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교수활동에 방해되는 그 어떠한 것도 교장이 앞장서서 막을 것이며 때에 따라서는 기꺼이 책임을 지겠습니다. 환영회가 조금 늦었습니다만 지금 이 순간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마이크를 들고 준비한 환영사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부서별로 앉아 있는 선생님들의 얼굴을 보면서 이름을 불렀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선생님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마치 선생님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어 기뻐하는 학생처럼 박수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선생님들이 바라는 교장의 모습은 어떤 거창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선생님들의 전문성을 신뢰하고 그들이 마음껏 가르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된다는 것을. 그 시작은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선생님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을.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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