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앨범과 저의 이야기는 2023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 앨범이 발매하던 시기에 제가 포르투 한달살기를 하고 있었는데요. 한창 락에 빠져서 다양한 밴드 음악을 듣던 시기라 즐겨 듣던 밴드인 블러가 정말 오랜만에 앨범을 냈다고 하니 발매하자마자 들어봤는데 정말 듣자마자 너무 좋더군요.
포르투 여행하면서 저 앨범을 정말 많이 들었었는데, 그 때 제가 묵던 숙소 아래 층에 귀여우신 노부부가 운영하시는 작고 빈티지하면서 아늑한 카페를 자주 갔었습니다. 거기서 수제 조각 케이크, 특히 당근 케이크랑 패션푸르츠 케이크 이런 것들이랑 카페 라떼를 마시면서 책을 많이 읽었는데 어느 날은 그 카페에서 저 앨범 중 저의 최애 곡이 흘러나오더라고요.
The Narcissist라고 하는 곡인데 초반부에 나오는 밝으면서도 어딘가 아련하고 슬픈 느낌이 나는 일렉 사운드가 시그니처한 곡이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도시의 제가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서 편안히 디저트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와중에 흘러나오는 제가 좋아하는 노래란.. 저는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합니다.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고 그 순간이 너무 좋았고 영원했으면 좋겠어서,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서 제 의지로 시간을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던..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제목은 자라 퇴사 결산이라면서 왠 포르투 한달살기랑 블러 9집 얘기만 하는지 의아해하실 것 같은데요.
자라가 매장이 트는 음악들이 정말 감도 높고 좋은 음악이라는거.. 알고 계신가요? 실제로 서양권에서는 밈으로 옷 사러 자라 매장에 들어갔다가 취향 저격하는 음악만 세 곡 알아내고 나왔다, 혹은 자라에 들어가서 음악을 들으면 데낄라를 주문하고 싶어진다 라는 식의 이야기가 많거든요.
유튜브에 ZARA House music setlist라고 검색하면 정말 많은 영상이 나올 정도로 유명하고, 주로 힙하고 감도 있는 하우스 음악을 트는 편인데, 가끔 K-POP이나 위켄드 같은 유명 아티스트의 음악, 혹은 락 음악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 쯤 들어보셨을 프란츠 퍼디난드의 Take me out이나 스트록스의 음악 처럼 락 기반의 노래들도 종종 흘러나오기도 하거든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매장에서 고생하던 어느 날에 블러의 The Narcissist가 흘러나오는게 아니겠습니까. 친구와의 포르투 한달살기만을 바라보고 일을 버티던 와중에 포르투에서의 추억이 가득한 저의 인생곡이 흘러나오는 순간, 제가 2년 전 여름, 포르투의 한 카페에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동시에 약간의 미묘함이 섞인, 그런 감정을 느꼈네요.
그 뒤로도 저 노래는 종종 흘러나왔고 들을 때마다 힘도 얻고 기분 전환도 하고 해서 정말 큰 위로와 응원이 되었던 것 같아요.
퇴사 기념으로 저 스스로를 위해서 뭔가를 사고 싶었는데 (사실은 소비를 위한 자기위안 같은거죠) 저 앨범을 사면 딱이겠다 싶어서.. 마지막 근무를 끝내고 정든 직원분들과 인사와 서로를 위한 응원을 나눈 뒤에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저 앨범을 주문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ㅎㅎ 텐테이블도 없이 LP들만 쌓여가는...
여튼 그래서 제 ZARA 생활의 마무리, 결산은 블러의 9집, The Ballad of Darren으로 하겠습니다. 이 글의 마무리는 그 앨범의 최애곡, 현시점 자라 매장 플레이리스트를 한 자리 차지 하고 있는 The Narcissist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