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은 아주 쉽게 처리한다.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지만 그냥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언젠간 필요해’라며 쉽게 장바구니를 채우고
여행 중에는 여기에 또 언제 올지 모르니 '이건 사야 해'라며 자의적인 타협을 한다.
배는 부르지만 또 '디저트는 먹어줘야지'하며 언제부터 위가 두 부분으로 나뉜 건지 간식배까지 서운치 않게 두둑이 채운다---- (다 나의 이야기). 하지만 이렇게 쌓다 보면 처음 설레며 저장해 둔 무언가는 또 다른 새로운 무언가에 의해 금방 잊히고 만다.
4월. 벌써 1년의 1/4분기가 지나가는 중이다.
이 시점에선 집안 곳곳 정리해야 할 물건들이 눈에 들어온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굳이 버리지 않고 있었다. '언젠간 입겠지' 하고 안 입는 옷들이나 양말, 안 쓰는 노트나 필기구들, 오래되어서 못 쓰는 화장품들 가지고 있다 보면 언젠간 필요할 것 같아서 못 버리는 가구, 그릇, 식기들, 책, 장난감 등 냉장고 속 음식들까지도… 막상 비워내면 개운하고 묵은 때를 벗긴 듯 시원한데 말이다.
한 번에 정리하려면 일주일도 모자랄 것 같다. 우선 보이는 것부터 하나하나 정리해 보자.
혼자 밥을 먹을 때는 항상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오롯이 즐기는 행위만 했다.
하지만 이젠 먹고 있는 그 행동 한 가지에 집중한다. 한마디로 멍을 좀 때리니 그 빈 공간이 확장되어 다른 새로운 생각들로 채워지기도, 그리고 자연스레 글감도 떠오르는 것 같다. (밥도 때리고 멍도 때리고 형돈님 ver.) 이렇듯 비우면 다시 채워진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들, 설거지하고 샤워하며 그리고 양치질하며 거울을 볼 때면 평소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여러 생각들이 후루루룩 봇물 터지듯 나오다가도 (어멋! 이런 생각을 하다니-감탄도 잠시) 그 공간에서 살짝 돌아 나오기만 하면 어느새 금방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린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그래서 항상 핸드폰을 옆에 두고 달력앱을 열어 오늘의 다이어리란에 휘발되어 날아가지 못하게 묶어둔 나만의 작은 아이디어들을 꽁꽁 싸매 놓는다. 내가 생각하는 창작은 정말 문득 스치는 찰나의 순간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마치 성냥개비를 마찰면에 그었을 때 불이 확 붙는 그런 찰나.
주부이지만 작가 소개란을 크리에이터로 정한 것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오늘 아이들에게 아침식사로 어떤 메뉴를 해줄지
오늘 날씨와 기분에 맞춰 어떤 코디로 옷을 골라줄지
카페에 가서 오늘은 어떤 것을 먼저 끝내고 그다음엔 무얼 할지 나름의 to do list를 계획하고
저녁준비를 하면서 오늘의 나물 반찬은 간장으로 간을 할지 소금이랑 액젓으로 할지
또 봄맞이 가구 배치는 어떻게 하면 깔끔하고 침구색은 계절에 맞게 어떻게 맞추면 좋을지
운동하러 나갈 땐 어떤 옷을 입고 옷 색깔에 맞춰 어떤 모자를 쓰면 좋을지 등등
매일 무수한 선택을 하며 그 속에서 나만의 잠재된 창의력을 이끌어내려 하기 때문이다.
죄의식 없이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준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STEAL LIKE AN ARTIST (저자 오스틴 클레온)이라는 책을 들여다보면 '이 세상에 오리지널은 없다' (이 책 거의 첫 부분에 나오는 문장이다) '쓰여야 할 모든 이야기들은 이미 다 쓰였다', '독창성이란? 들키지 않은 표절이다' (윌리엄 랠프 잉) 이 문장에서 내심 기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딱 방법을 제시해 주니 들키지 않는 방법만 연구하면 될 듯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듯이 누군가가 언제 누구를 따라 했고 어떤 방식으로 들키지 않게 하는 것인지가 포인트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00% 순수 창작이라기보다 나만의 감성을 마구 뿌려주어 또 다른 나만의 개성으로 무장한 창작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인간에겐 참 멋진 약점이 있다. 완전히 똑같은 카피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연필로 같은 별을 그리더라도 완전히 같은 별을 그릴 수 없는 것처럼.. 그러니 어느 분야에서든 창작을 두려워할 것도 머뭇거릴 일도 아니다. '당장 사랑하는 것을 카피하라. 카피하고 카피하고 카피하라. 그 수많은 카피들 끝에 자기 자신을 찾을 것이다' (요지 야마모토)
언젠가는 나만의 창작이라는 작은 점들이 모이고 모여 휘발이 아닌 날개를 달고 멀리멀리 날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