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직 12:40분인데 왜 1시라고 해?’
우선 나의 시계
이것도 후하게 쳐준 거다. 시계는 이미 30분 전부터 1시를 향해 빠르게 가고 있다.
늦지 않도록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면 말이다.
그렇다. 난 항상 2,30분을 먼저 예측해서 아이들이 미처 못 챙겨서 생길 서두름을 방지하기 위함이라 말하고 싶다. 만약 시간에 딱 맞춰서 준비하다가 갑자기 필요한 게 안 보인다던지 했어야 했는데 못했을 때를 대비해
예비 시간을 벌게 해 주려는 것이다. 아이들은 도대체 이해 못 한다고 하지만...
“엄마, 다했어”
“벌써?”
첫째의 시계
샤워해, 양치질해, 책 읽은 거 정리하자 라는 미션이 주어지면 또래에 비해 몸은 헤비급이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순식간에 해치워버린다.
(이 미션의 통과기준에서 ‘잘함’은 살짝 뒤로하고)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지독하게 자동차를 사랑하고 그러다 F1에 빠지고 요즘은 자전거도 스피디하게
타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서 그런지
먹는 것 씻는 것 공부하는 것조차 빠르게 해치우는 아들이다.
집에 진득하게 가만히 있기보다 하루에 3~4번 외출은 기본이다.
누구보다 빛처럼 빠르게 움직여서 등교를 준비할 때 ‘빨리하자’를 외친 적이 없을 정도.
실은 너무 빨리해서 양치질을 두 번 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성격이 급해 실내화를 안 넣고 가방만 들고 학교에 간 적도 있다.
항상 식사시간엔 누구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고 앉아 엄마인 내가 마지막으로 앉을 즈음에는 벌써 식판의 바닥이 보인다.
첫째에게 ‘빨리’라는 단어는 없지만 ‘좀 천천히 하자’라는 말은 하루에 열두 번도 되풀이된다.
이렇게 휘리릭 먹는 식사습관이 지금의 몸무게를 유지하게 하는 아주 치명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제 중학생도 되고 하니 조금만 더 여유 있게 잠시 멈춤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이야, 늦겠다”
둘째의 시계
우리 집, 그리고 내 주변의 둘째들의 시계는 이렇듯 느리게 흘러가는 듯하다.
둘째 조카도 옆 집네 둘째들도 하나같이 느릿느릿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갑자기 화장실로 사라진 둘째의 시간은 마치..
휴양지 바닷가에서 썬베드에 몸을 맡긴 채 시원하고 달달한 음료 한잔을 빨대로 홀짝홀짝 마시는 그런
여유로움으로 가득하다. 그 문 뒤로 학교에 지각할까 애타는 엄마의 마음도 모른 채…
실제로 거의 25분 동안 변기에 앉아있다가 선생님께 늦는다는 문자를 보낸 적도 있다.
몇 년 전,
엄마(나), 오빠와 같이 외출을 하기로 하고 옷도 다 입었는데 갑자기
평소엔 잘 갖고 놀지 않던 인형을 찾기 시작한다. 그 인형을 꼭 가져가야 한다며.
첫째와 나는 우리 지금 나가려고 준비 다 했으니 갔다 와서 찾아볼까?를 제안했지만 역시
귀뜽으로도 듣지 않던 말 디게 안 듣던 미운 9살은 꼭 찾아야 한다고만 한다.
결국 찾지 못한 인형을 원망하며 우리는 그날 외출을 하지 못했다.
어쩔 땐 이 아이가 시간개념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
그래도 다행스럽게
친구와의 약속은 아주 칼 같이 지킨다.
약속이 있는 날이면 먼저 양치를 하고 옷을 챙겨 입고 시간체크를 하며 5분 먼저 집을 나선다.
상황에 따른 시간의 개념이 달랐을 뿐 아예 없지는 않았다.
남편의 시계
우리와는 다르게 정상적인 낮과 밤이 아닌 5시간 가량의 차이가 있다. (그 넓디넓은 중국도 없는 시차가 우리집에 있다)
집에서 프리랜서로의 일 특성상 낮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점심을 저녁에 먹고
새벽시간(나머지 가족들이 잠든 시간)에 저녁을 먹으며 다시 아침 일찍 잠들어 낮에 일어난다.
그러니 배꼽시계도 다르다.
평일엔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도 나만의 시간을 채우니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하지만 주말은 다르다.
아이들도 평일보다 느지막이 기상하지만 일어나자마자 간단하게라도 밥이든 빵으로든 배를 채운다.
그리곤 각자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아침을 먹고 한 가지 집안일을 도우면 게임을 1시간 할 수 있다)
아빠가 일어날 때 즈음 점심 먹을 시간이 된다. (오후 1~2시)
사실 이때쯤이면 나의 시계는 하루가 다 가다시피 한 느낌이다. 해가 짧은 겨울엔 특히 더.
해는 이미 중천에 떠있고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늦은 시간 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미리 정해놓은 스케줄은 없지만 그래도 외출을 해야 한다면 조금 일찍(내 기준 오전 11시 전) 나갔다가
간단하게 요기를 한 후 이른 저녁을 먹고 귀가하는 것이 나만의 주말 시간표인데
몇 년째 이 시간표는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기준은
아이들이 꼬꼬마 시절, 육아서에서 읽었던 하나의 글귀가 지금까지 잠재적으로 나의 뇌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인 것 같다.
‘아이와 저녁에 마트에 가지 마라’
그 이유가 생각 안 나서 Chat GPT에게 물어보았다.
‘아 이거 많은 육아서에 나오는 완전 단골 조언이야.
결론부터 말하면, 그 이유는 아이의 ‘의지력·감정·뇌 상태’ 때문이야.
① 아이의 자제력은 저녁에 바닥난다
아이의 뇌, 특히 자기 조절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은
아침 → 낮 → 저녁으로 갈수록 점점 피로해져.
② 배고픔 + 피로 = 최악의 조합
저녁 시간대는 보통 배고프고 졸리고 피곤한 상태
이 상태에서 마트에 가면?
당분 많은 간식
장난감
색깔 화려한 패키지
아이 뇌는 즉각적 보상에 완전히 끌림. 그래서 이성적 판단은 거의 불가능해져.
④ 부모도 저녁엔 에너지가 없다
아이만 힘든 게 아니라, 부모도 저녁엔 한계 상태야.
하루 종일 일/육아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
그래서 평소엔 할 수 있는 설명, 공감, 단호한 훈육이 전부 무너지고
“아 그냥 하나 사주자…” 가 되기 쉬워 (남편의 주 무기였음)
맞다! 이거였다.
부모도 아이도 힘든 시간대였던 것이다.
이제 떼쓸 나이는 지났지만 어둑어둑해진 밤이 될 때까지 밖에 있는 것보다
하루의 시작을 조금만 서둘러 내일을 위한 시간을 남겨두자는 것이다.
각자의 시계로 돌아가는 하루가 오늘도 어김없다.
앞으로 이 시계들이 언젠가 하나의 시간으로 맞춰질지는 모르겠지만
각자의 시간 속에서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도 주말은 어떻게 안 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