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은 유난히 맑고 화창하다.
매년 설 전날,
어머님댁에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아주 푸짐하고 맛있는(교자상의 빈틈이 없는)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시끌벅적 이야기 꽃을 피우며 하루를 보낸다.
다음 날, 바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게 눈곱 잔뜩 낀 채로 부스스 일어나 TV 만화 프로그램을(집에서는 못 보는) 원 없이 보는 아이들, 어제 기분 좋게 마신 으른 알코올 음료로 더 깊고 달콤한 잠에 빠진 어른들.
그러다 언제나처럼 아침을 누구보다 바지런하게 준비하시는 할머니가 '일어나 아침 먹어' 모닝콜해주시면 까치집 머리를 하고 바글바글 끓여주시는 떡국을 또 푸짐하게 먹고(고봉 떡국을 주시고도 모지라면 더 달라하라고 하시는) 손자 손녀들 추울까 봐 보일러 아낌없이 틀어주신 덕분에 등 따시고 늘어지는 오전을 보낸다.
그러다 집에 계속 있으면 할머니는 또 늦은 점심을 준비하시.... 기 전에 빠른 손놀림으로 남편은 식당을 검색한다. 오늘은 짜장면.
아버님이 건강하실 때 항상 성묘 갔다 내려오며 들러서 먹고 온다는 그 중국집으로 향했다.
'영업 중'이라는 포털사이트의 안내에도 외진 시골마을은 혹시 모를 변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전화 걸어본다.
"네, 동신원입니다" (이 짧은 말이 랩처럼 들렸다, 바쁘셔서 단숨에 내 뱉어진)
"아.. 네 오늘 영업하시죠?"
"네, 근데 3:30까지 빨리 오셔야 해요" 짧은 대답이었지만 굉장히 친절하지 않은 말투로 할 말만 하고 바로 끊으신다. 남편말로는 원래 퉁명스러우시다고.. 그도 그럴 것이 설날에 영업하시니 동네분들 그리고 단골 분들까지 많이 오셨을 것 같다. 도착하니 예상대로 기다리시는 분들이 있었고 안에 들어가니 숟가락 젓가락만 세팅되어 있는 테이블이 많이 보였다. 아직 음식이 나오지 않았으니 우린 조금 많이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
수타로 뽑는 면을 먹기 위해 거의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평소라면 다른 식당을 알아봤겠지만 여기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음식을 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오랜 기다림에 끝에 먼저 나온 탕수육을 보자마자 아이들의 젓가락은 빛보다 빨랐다.
다른 곳과 다르게 소스가 거의 투명에 가까웠고 튀김의 정도가 딱 내 취향이었다. 겉바속촉. 정말 맛있었다.
웨이팅 순번을 기다리는 동안 외벽에 그려진 그라피티가 눈에 띄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살펴보며 이런 곳에 이렇게 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니 신기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언뜻봐도 전문가의 터치가 느껴질 만큼 완성도도 높아 보였다. 아담하고 조용한 동네에 이렇게 힙한 그림이 있을 줄이야.
맛있는 음식과 오랜만에 청량한 파란 하늘을 보니 내 마음까지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그래, 2026년은 오늘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