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부터 본집에서의 짐 철수가 시작되었다. 친구가, 이삿짐 정리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고 추천해준 업체에 이사를 맡겼다. 말대로 아저씨들이 시원시원하게 일을 잘했다. 옷장과 팬트리 안의 물건들을 모두 꺼내 짐 상자에 넣어 테이프 찌익 떼 붙이고, 그릇이랑 가재도구들은 상하지 않게 간지 넣어 차곡차곡 정리하고, 가구와 가전도 정체불명의 천으로 감싸서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입 댈 것 하나 없이 일을 잘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내 짐 잘 부탁한다며, 중간에 커피와 간식도 넣어드리고 점심 식사 비용도 따로 챙겨드렸다. 우리나라에 팁 문화는 없지만, 나는 이런 식으로 팁을 드리는 것을 좋아한다. 아저씨도 좋아하셨다.
짐을 모두 뺐다. 이사를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니면서, 텅 빈 집을 보면 늘 마음이 이상하다. 우리 아이들이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엎드려 놀던 거실과 내가 앉아서 커피 마시던 아일랜드 식탁에 이제 아무것도 없다.
아니, 이 집에 내 것이 아닌 부분이 이제야 드러났음을 확인한다. 주인처럼 남아 있는 벽과 거실 바닥, 찬장 등을 한 번 휘 둘러봤다. 익숙하고 정든 이 공간을 이제 다시 볼 일이 없겠구나. 또 한 번 마음이 심란해진다. 신발을 신은 채 집 안을 돌아다녔는데, 그 또한 생경한 느낌이라 이젠 진짜 가야겠다며 집에게 인사했다.
“안녕, 잘 있어.”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도 아쉬운 이별을 하고 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우리의 새로운 거주지로.
점심을 간단히 먹고 이사하는 집에 도착해 보니, 이삿짐 차가 이미 아파트 1층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역시, 이삿짐센터 사장님은 그 큰 트럭을 시원시원하게 전진 후진했다. 다른 차량의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운전도 참 잘하셨다. 관리사무소에 들러 오늘 이사 들어오는 집이라고 신고하고 안내사항이 적힌 종이를 받아 들었다. 이삿짐 아저씨들은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집에 짐을 들여놓는데, 사장님이 고개를 갸웃갸웃한다. 스읍 스읍. 뱀도 아니고 자꾸 스읍 스읍 하길래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전에 살던 아파트 참 좋았지예?” 하신다.
“네?”
“전에 살던 집이 억수로 예쁘던데. 난 그런 집이 좋더라. 새집이라 편했을 긴데. 거기랑 여기 레벨이 너무 차이나. 사모님, 이제 큰일 났디.”
“아니 왜... 요?”
“여기는 뒷베란다가 엄청시리 작네. 사모님이 쓰는 세탁기랑 건조기가 커갖고 들어가지도 몬해. 그리고 중문 좀 봐요. 이거 와이라는데. 아귀도 안 맞고 기울어져가 열어도 자꾸 닫혀. 오토네 오토 껄껄껄”
정말 그랬다. 베란다가 희한하게 생겨서는 세탁기 하나 간신히 들어갈 것 같고 세탁기와 건조기를 쌓을 수도 없도록 수도꼭지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중문은 나무 재질이었는데, 아파트 짓고 30년 동안 한 번도 바꾸지 않았는지, 맞물리지 않는 덜거덕 소리를 냈다.
“사모님, 저것도 보세요. 저 창문 위에 뭘 박아놨는지.”
가서 보니 거실 창문 위 천정에 직육면체 모양의 나무가 못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저건 뭐예요?” 내가 물었다.
“거실 창은 아귀가 안 맞는 정도가 아이네. 윗부분이 아예 떴어. 저 나무 없었으면 창문이 거실로 쓰러지겠는데예?”
정말 그랬다. 바닥이 가라앉았는지, 천정이 솟았는지 거실 창문의 크기가 창틀 크기보다 1~2센티가량 작았다. 못 박은 나무가 없었다면, 벌써 창문이 쓰러져 와장창 깨지고도 남을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아니, 저런 것도 안 보고 계약했다고예?”
“아... 하하...”
안 보고 계약했다.
그때의 집값은 지금과는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었다. 잘 모르는 동네니까 덜컥 집을 살 수가 없어서 일단 전세로 들어가기로 했지만, 전세라고 해서 구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적당한 집은 고민해보는 사이에 금방 다른 사람과 계약이 되어버렸다. 집과 전세 가격은 자꾸 오르고, 우리는 더욱 초조해져만 갔다.
그러던 찰나 이 집이 전세로 나왔는데, 아 글쎄, 거주하는 임차인이 코로나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이 집에 들어오는 것이 싫다며, 집을 안 보여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말인지 방구인지, 어이가 없었지만 우리는 집을 빨리 구해야만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럼 집의 내부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고, 거실과 방을 찍은 4개의 사진을 받았다. 휴대폰 사진을 이리저리 확대해서 봤다, 그거 본다고 뭐 아나 싶지만, 그거라도 보니 불안은 좀 걷혔다. 그리고 그대로 계약을 진행했다.
베란다가 저렇게 코딱지만 한 건 청소하러 왔을 때 알았지만, 창문마다 아귀가 안 맞고,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나무로 대충 거실 창을 막아놓았던 것은 몰랐다. 화장실 수전에서는 밤새도록 물이 똑똑 떨어지고, 비만 오면 앞 베란다 바닥에서 물이 샘솟아 나오는 기적을 체험할 줄도 몰랐다. 방충망이 삭을 대로 삭아서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기만 해도 구멍이 뚫리는 줄도 몰랐고, 클린하우스도 없어서 재활용 쓰레기를 일주일에 단 하루, 그것도 밤 9시부터 아침 9까지 정해진 시간에 주차장 한쪽 공간에 버려야 한다는 것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엉망진창이었다.
전세계약이라는 것을 나이 마흔에 처음 해보는 우리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온실 속 화초. 그게 딱 우리였다. 마흔 짤의 어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