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밥도 두둑이 먹었겠다, 아이들과 어떤 책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하며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었다.
“엄마, 저 아주머니 뭘 줍는 거야?"
앞서 걷던 아들이 물었다.
어떤 아주머니가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그 안에다 노랑 잎들을 열심히 주우며 걸어가고 있었다.
“아아, 은행잎을 줍고 계시네.”
아주머니는 깨끗하고 예쁜 은행잎만을 골라서 봉지에 담고 계셨다.
“은행잎을 왜 주워가셔?”
“글쎄...”
그것으로 무얼 하려고 하시는지는 나도 궁금했지만 직접 묻지 못했다. 노란 은행잎을 주워서 어떤 일을 하는 거냐고 묻기는, 묻는 나도 민망하고 대답하는 아주머니도 민망할 터. 하지만 그걸 보는 내 마음은 벌써 중고등학교 시절 예쁜 단풍잎이나 은행잎을 따서 두꺼운 책에 꽂았다가 코팅을 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예상치 못한 그 추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예쁜 은행잎을 주우려고 한참을 돌아다니는 그 모습이 더욱 인상 깊었던 것은, 더 예쁜 은행잎들이 나무에 많이 달려 있다는 데에 있었다.
더 완벽하고 더 깨끗한 은행잎은 나무줄기에 온전히 달려 있다. 한 번에 많은 은행잎을 따려면 은행나무를 흔들기만 하면 된다. 후드득 떨어진 은행잎 더미에서 손쉽고도 빠르게 가져갈 수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그 마음. 그 마음이 예쁘다.
그리고 이 일은 나에게 또 다른 어떤 날이 떠오르도록 했다.
몇 년 전에 나는 사택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깡시골에 위치한 사택이라 낮시간에 잠깐 아이들이 길에서 소소하게 놀뿐, 저녁에서 밤까지는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아서 아주 조용한 동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1시쯤 되었을까. 소파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바깥에서 트럭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은 2층이었고, 입주민들은 대부분 승용차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트럭이 내는 소리는 이질감이 느껴져서 주목하게 되었다. 트럭 소리가 멈추고 나자, 이번에는 무언가를 탁탁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이 시간에 바깥에서 큰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잘 없거니와, 왠지 모르게 불쾌감이 느껴지는 그 소리에 커튼을 제쳐서 얼른 바깥을 봤다. 그 순간 “헐”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소리를 내는 주인공은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아파트 앞의 꽃사과 나무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어떤 아저씨였다.
"탁, 탁" 소리가 날 때마다 ‘후드득, 후드득’ 꽃사과들이 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녔다. 황당한 그 광경에 나는 내가 맞는 것도 아닌데 직접 맞는 것처럼 아프고 화가 났다.
“왜 저래?”
내 말에 남편이 무슨 일이냐며 창문으로 다가왔다.
“저기 봐봐, 저 아저씨가 지금 트럭 몰고 들어와서 꽃사과나무를 때리고 있어. 열매 따가려고 저러나 봐. 어머 어머. 왜 저래 정말.”
남편은 내 뒤에서 잠깐 보더니,
“동네 돼지 축사하는 아저씨인가 보다. 돼지 먹이 주려고 따가나 본데?” 했다.
“돼지 먹이?”
아저씨는, 사택까지 날아오는 강렬한 분뇨 냄새로 존재감을 드러내던 어느 돼지 축사의 주인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멀쩡한 나무를 저렇게 때려서 따가도 되는 거야? 그리고 여긴 엄연히 회사 땅인데 누구 허락 맡고 들어왔대?"
그러고는 남편이 말릴 새도 없이 나는 창문을 확 열어버렸다.
“아저씨.”
내 감정과는 다르게 목소리가 상냥하고도 자그맣게 나왔다. 겁은 많아서.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는 장대를 휘두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이쪽은 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나무를 때리고 있었다.
아저씨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그제야 고민이 됐다. 뭐라고 해야 하지. 멈추게 해야 하는데. 뭐라고 하면서 멈추라고 할까.
‘아저씨 누구세요.’ (누군지 밝히고 내가 낸데! 하면 할 말이 없는데.)
‘여기 회사 땅이에요.’ (안 그래도 지역주민과 사이가 좋지 않아 그런 말은 부적절하지.)
‘아저씨 뭐 하세요?’ (응, 사과 따~ 하면서 더 열심히 휘두를까 봐 안돼 안돼.)
오만가지 말을 떠올리던 중, 갑자기 아저씨가 나를 홱 쳐다봤다.
헉, 막아야 해. 빨리 말해. 나는 힘겹게 입을 뗐다.
“나... 나무가 아파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너무 빙구 같은 말이 들려서. 내 뒤에서 남편이 말한 것처럼 연기할까? 말투는 또 왜 이리 상냥해. 어휴. 창피함은 나눌수록 배가 되는지 남편이 옆에서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저씨는 대답이 없었다.
전투력을 상실했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지만 숨죽이고 지켜봤다.
아저씨는 혼란스러운지 막대 휘두르기를 잠시 멈췄다. 그리고코를 한 번 만지더니, 트럭으로 가서 큰 자루와 눈삽을 들고 돌아왔다.
바닥에 잔뜩 떨어진 꽃사과들을 삽으로 벅벅 긁어 묵묵하게 자루에 담았다. 꽃사과가 가득 든 자루를 트럭에 싣고는, 왔을 때와 똑같은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어쩌면 축사를 운영하는 아저씨에게는, 꽃사과나무가 그저 가축의 먹이로밖에 안 보일지도 모른다. 늘 똑같은 사료를 먹는 가축들에게 한 번쯤은 특별식을 먹이고 싶은, 그런 사랑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또 따지고 보면, 어차피 아무도 따서 먹지 않는 꽃사과 아닌가. 그렇게라도 효용을 찾았으니 더 잘된 일이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남들은 별 것 아니라고 하는 약한 것들. 공격을 받아도 되갚지 못하는 것들. 맞으면 아프고 꺾으면 상한다고 되받아치지 못하는 그런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주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