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by 글린트

고등학생 시절. 나는 끝도 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나쁜 짓을 하거나 어른에게 대든 것이 아니었다. 헤맬 방에 헤맬 황을 써서 방황이라지만 나에게는 한글로 헤맨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공부, 운동, 교우 관계. 그 모든 것들은 무난했다. 나에게 그런 것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일정 수준 이상은 되는, 특별할 것 없는 항목이었다. 모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쉬웠다. 그래서 우스웠다.

무난하게, 고루고루, 어느 정도. 나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획득할 수 있는 것을 다른 아이들은 코피 터뜨려가며 쟁취하려 했다. 그런 친구들의 모습에 나는 환멸을 느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저들이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가 없었다. 재미없었다. 그냥 다 뒤집어졌으면. 발칵 뒤집어졌으면 하고 날마다 바랐다. 공부 말고 중요한 것이 없다는 듯 떠드는 인간들이 하찮았다. 대학 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게 이 세상에는 분명히 있다. 아니, 많을 것이다. 고민도 안 해보고 바보같이 한 곳만 바라보는 학교 안의 풍경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교실 벽 전자시계가 10:10에서 10:11로 바뀌는 데 십 년이 걸렸다. 칠판만 쳐다보는 친구들의 뒤통수가 징그러웠다. 점심에는 밥 냄새가, 체육 시간에는 땀 냄새가 역겨웠다. 교실에 앉아 책상에 대고 샤프를 눌러 샤프심을 똑똑 부러뜨렸다. 가방에 있던 연습장을 꺼내 한 장씩 북 뜯어 구겼다. 친구들이 하나둘 쳐다봤다. 다음 날부터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하루 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잠이 오면 자고 깨어나면 깼다. 천정을 보며 공상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실 공부를 능멸하는 나의 시각은, 막상 나에게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닐지 하는 두려움과 상충했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나의 능력들은 중상의 실력까지였다. 나는 늘 고만고만한 수준까지만 도달할 수 있었다. 내 안에는 열정도 꿈도 없는데, 무엇을 위해 힘을 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자가 된 기분이 나를 지배했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셨다. 학교를 관두고 자기 방에 틀어박힌 나를 혼내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내 눈치를 살피며 끼니때마다 방으로 음식을 넣어주셨다. 부모님의 묻는 말을 내가 귀찮아하자, 민준이 다 먹었니? 민준아 자니? 하는 물음 외에는 하지 않으셨다.


열두 살쯤에 대학교 영재원에 들어갔었다. 형이 떨어졌던 과정에 내가 붙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나는 모범생 민혁이 형의 조용한 동생이었는데, 이제 똑똑한 그 집 둘째 아들이 되었다. 달라진 내 위상에 가장 충격을 받은 건 형이었다. 형은 학교와 학원 숙제 한 번 빠트린 적이 없었다. 형은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이 나오면 재밌게 보다가도 숙제를 마저 하고 봐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가는 사람이었다. 내가 영재원에 합격한 후부터 형은 내가 말을 걸어도 잘 대답하지 않았다. 심심해서 형의 방문 앞에서 서성거리면 형은 열려 있던 문을 쾅 닫아버렸다.

부모님이 외출하신 날이었다. 나는 혼자 소파에 누워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형이 자기 방에서 나와 물을 마시러 갔다. 형에게 말을 걸면 날카롭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런데 물을 다 마신 형이 웬일로 내 쪽을 보며

게임하냐? 하고 물었다.

나는 형이 나에게 물은 것인지 확실치 않아서 가만히 있었다.

게임하냐고? 형이 또 물었다.

응.

형은 내 쪽으로 걸어왔다. 누워있던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형은 내 옆에 앉아서 내가 하는 게임을 봤다.

아, 이거?

형도 해볼래?

형은 내가 건넨 게임기를 받았다. 오랜만에 한다면서도 형은 나보다 게임을 훨씬 잘했다. 피식 웃기도 하고 나를 툭 치기도 하자, 나는 다시 형과 가까워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우리 반에 천영환이라고 있어.

형은 게임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걔가 학교에 안 나온 지 두 달 정도 됐어. 오늘 성수한테 들었는데, 영환이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더라고.

갑작스러운 형의 친구 이야기에 나는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걔가 학교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을 꼬박꼬박 가는 게 이상하기는 했거든. 무슨 쉬를 얼마나 싸길래 화장실을 그렇게 가. 이상하잖아. 근데 다른 애들이, 걔가 화장실에서 쉬를 싸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

형은 게임을 하고는 있었지만, 집중하지 못했다. 형의 비행기는 미사일을 피하지 못해 자꾸 죽었다.

손을 씻었대.

형이 말했다.

손을 씻었대?

응. 손바닥 피부가 다 벗겨지도록 씻고 또 씻고 했대.

형은 이제 게임기를 소파에 내려놓았다.

알고 보니, 영환이네 엄마가 계몬데, 걔보고 맨날 입 냄새 난다, 더럽다, 씻어라, 하면서 애를 가스라이팅했나 봐. 영환이 입양됐거든.

형은 이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교실에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가스라이팅하지 말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 냈대.

가스라이팅? 나 알아. 그거지? 막 자기 마음대로...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 말은... 입양. 입양된 거라고.

형은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형과 나는 한동안 서로 쳐다보기만 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것을 느끼며 영재원 수업을 시작했다. 교수님이 제시하는 문제와 풀이방법은 여태까지 학교와 학원에서 했던 공부보다 재미있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시간 안에 결과물을 빨리 내라고 재촉하는 학원보다 영재원이 더 잘 맞는 것 같았다.

영재원 수업이 점점 더 재밌어지던 4주 차 수업 때였다. 2시간의 수업 후에 30분짜리 테스트를 봤다. 그날따라 감기였는지 비염이었는지 모를 코막힘이 수업 내내 나를 괴롭혔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어지럽고 머리가 아팠다. 수업 도중에 흐름을 끊고 교수님께 집에 가겠다는 말을 하기가 창피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자리에 앉아있었다. 테스트 용지를 받고 문제를 읽어봤다.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친구들은 연필로 서걱서걱 답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뭐라도 써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먼저 나오기로 마음먹고 고개를 들어 교수님을 찾아봤다. 교수님은 의자에 앉아서 책에 열중하고 계셨다. 어쩌지, 잠시 고민하는데 옆자리의 영우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영우는 내 책상의 종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나의 답안지가 하얗게 비어 있는 것을 영우가 보는 것이 싫었다. 팔로 답안지를 슬쩍 덮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나와 종이를 봤다.

‘뭐지? 왜 저렇게 쳐다보는 거야?’

왠지 기분이 나빠진 나는 영우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 턱을 괴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이제 쳐다보지 않겠지, 하며 영우 쪽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영우는 아직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살짝 웃는 얼굴이었다.

‘왜 저래?’

여태까지 같이 수업을 들으며 영우가 이상한 아이라고 느껴본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정말 이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우의 손에 작은 쪽지가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는 곧 그 쪽지를 내 책상으로 던졌다.

톡.

연필 서걱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그게 내 책상으로 떨어지는 소리는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영우를 보니 그는 나를 향해 싱긋 웃고는 다시 자기 시험지를 보며 문제를 풀었다.

종이를 펴봤다. 종이에는 아까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가르쳐주셨던 공식 중 한 가지가 쓰여 있었다. 문제에 적용하기만 하면 되었다. 영우는 커닝 페이퍼를 만들어 나에게 던진 것이다. 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코를 킁킁거리는 내가 불쌍해 보였나? 영우는 왜 이것을 나에게 던진 걸까.

작은 종이에 적힌 공식을 봤다. 오늘 배운 내용이 이거였지, 맞아. 하며 시험지에 식을 한번 써 보았다. 연필로 종이에 꾹꾹 눌러 막힘 없이 과정을 써 내려갔다. 답은 맥없이 쉽게 나왔다. 바로 그때 30분이 지났다는 알람이 울렸다. 교수님이 의자에서 일어나셨다.


‘어, 답을 지우고 내야 하는데.’ 생각하는 찰나, 뒤에 앉아있던 친구가 와서 종이를 걷어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영우가 준 종이를 구겨 얼른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시험지를 내고 나서 친구들은 가방에 책과 필통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나도 일어나 내 가방을 챙겼다. 떨떠름한 기분이었지만 어서 가서 코막힘부터 해결하고 싶었다. 가방을 뒤로 메고 교실 밖으로 나서려는데


민준아, 잠깐만.

교수님이 부르셨다. 교수님 옆에는 영우가 서 있었다.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교수님과 영우를 번갈아서 봤다. 교수님은 영우에게 먼저 가라고 하셨다. 영우는 교수님에게 꾸벅 인사하고 돌아 나를 한번 쳐다봤다. 입가에 미세한 웃음이 언뜻 스쳤다. 교실에 있던 다른 친구들도 이제 모두 밖으로 나갔다. 교실에는 교수님과 나만 남았다.

교수님이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셨다. 앞으로 걸어가면서 멍한 머리로 생각을 해보려고 애썼다. 영우는 교수님에게 뭐라고 했을까. 교수님의 표정이 아리송했다. 혹시 커닝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닐까. 감이 잡히지 않았다.

민준아. 우리 같이 수업한 지 4주가 됐네. 수업은 재밌니?

네.

아까 수업하면서 보니까 민준이 어디가 좀 불편해 보이던데, 괜찮아?

네.

그래...

교수님은 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서 내 바지 주머니 쪽을 보셨다. 아. 이제 알 것 같았다. 영우는 나에게 커닝 페이퍼를 던져서 덫을 놓았던 것이다. 그 덫에 내가 걸려들자 나를 골탕 먹이려고 교수님께 이른 것이다. 부끄러운 동시에 화가 났다. 당장 영우에게 달려가 주먹으로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거 좀... 볼 수 있을까?

교수님은 자기도 민망하다는 듯이, 아니면 비웃듯이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구겨진 종이를 꺼냈다. 종이를 건네받은 교수님은 천천히 종이를 펴서 들여다봤다.

오늘 테스트 본 내용이 맞네. 아... 민준아...

그거 영우가 준 거예요. 제가 적은 게 아니에요.

나는 억울했지만 눈물을 꾹 참고 말했다. 진실을 밝혀야 했다. 영우가 나를 곤란에 빠트린 것이다. 가만히 있는 나를 가지고 노는 사람은 영우다. 지금 교수님과 대화해야 할 사람도 역시 영우였다.

그래, 알아. 영우가 줬다고 아까 말했어.

네?

영우가 줬다고 교수님께 말을 했다고? 영우가 줬다고 말했다면 영우의 잘못이 맞는 것 아닌가? 그럼 나를 왜 부르셨지?

그런데 이걸 보고 답을 적은 건 민준이 맞잖니.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영우가 던진 쪽지를 보고 무시했어야 했다. 다시 영우에게 던져버리든지 그냥 찢어버렸어야 했다. 그 종이를 보고 쉽게 답을 도출하며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던 것은 나의 잘못이 맞았다. 부끄러움과 분노가 동시에 일었다.


그다음 수업에 갔을 때 교실에 모여 있던 친구들이 나를 힐끔거렸다. 한두 명은 대놓고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영우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영우에게 나는 너무 손쉬운 상대였다. 그날이 나의 마지막 영재원 수업이었다.

한 달 후부터 나는 눈을 자주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자꾸 눈을 깜박거리니까 어머니가 나를 안과에 데리고 가셨다. 의사는 진찰한 후에 내 눈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틱 증상일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학교에도 가지 않으려는 나를 어머니가 간곡하게 설득하셨다. 선생님은 1교시만이라도 참석하라고 하셨다. 등교 일수를 겨우 채우기는 했지만, 1교시 그 잠깐의 시간도 주변 친구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아서 나는 얼굴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눈을 깜박거리는 증상은 몇 개월 후에 사라졌다.


이미 한번 초등학교 때 그런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서인지 부모님은 나를 조심스럽게 대하셨다. 나의 이유 모를 두문불출에 화가 나실 만도 한데 두 분은 인내심 있게 나를 기다려 주셨다.

그렇게 대책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던 나는 우연히 어떤 유튜브 영상을 하나 보게 됐다. 영상 안에서 울리는 베이스기타 연주자의 영상이 이상하리만치 강하게 뇌리에 남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들어도 저음으로 둥둥 울리는 그의 베이스 소리는 정말 멋있었다. 이후로 그의 채널을 구독하고 알림 설정을 해두고는 새로운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꼬박꼬박 챙겨봤다. 그러다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 하나를 보았다.

’이 형 우리 교회 베이스 연주자임. 실제로 들으면 더 멋짐.‘

나는 홀리듯 그 유튜버가 다닌다는 교회를 찾아갔다. 실제로 들으면 더 멋진지 한번 보기나 하자는 순전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교회는 우리 동네에서 전철로 30분 거리에 있었다.


수요예배 시간이었다. 교회는 일요일에만 가는 줄 알았는데 수요일 저녁에도 예배가 있었다. 일요일에 드리는 예배는 대체로 엄숙하지만, 수요일에는 찬양을 위주로 한다고 했다. 내 딴에는 일부러 날을 골라 수요일에 간 것이다.

적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교회였다. 높이 십자가가 달려있고 그 아래로 커다랗고 동그란 유리창이 반짝였다. 교회 정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직 교회 안으로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음악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음악이었고 그 안에서 베이스가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다.


문 안으로 들어가기가 멋쩍었다. 나는 교회에 다니지도 않는데 들어가도 되나, 베이스기타 소리 들으러 왔다고 하면 미친놈이라고 할 텐데. 교회 앞에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서성거렸다. 정문에 서서 사람들을 맞던 한 아주머니가 가까이 다가왔다. 나에게 교회에 처음 오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나를 데리고 정문을 지나 예배실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보는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예배실 정 중앙을 걷자니 부끄러웠다. 게다가 아주머니는 부담스럽게도 나를 맨 앞자리로 안내하셨다. 평소 같았으면 당연히 뒤에 앉겠다고 했겠지만, 앞자리는 밴드와 가까웠다. 부담감만 잠깐 참으면 바로 앞에서 베이스 연주자를 볼 수 있었다. 못 이기는 척 나는 맨 앞으로 갔다.

유튜브에서 보던 것보다 베이스기타의 소리는 더 웅장했다. 일렉기타와 신시사이저, 드럼에다 앞에 선 보컬의 음성까지 섞였지만, 나에게는 베이스 소리만 들렸다. 느리게 두웅 드드둥 드둥 하는 베이스 소리가 가슴을 울렸다. 묵직하고 든든한 군인의 걸음 소리 같았다.

눈을 감고 연주에서 베이스 소리만 뽑아내 흠뻑 빠져들었다. 스피커가 가까워서 베이스의 둔중한 음이 울릴 때마다 내 머리카락도 살짝 날렸다. 한 곡, 또 한 곡 한참 그렇게 듣다가 눈을 살짝 떴다. 내 바로 정면에 신시사이저 연주자가 있었다. 앉아서 건반을 치는 그녀는 나와 눈높이가 같았다. 눈을 감고 있던 나를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 얼굴에서 갑자기 열감이 확 느껴졌다. 급히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봤다. 아까 교회 앞에서 받은 주보를 괜히 뒤적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안 보는 척하며 슬쩍 그녀를 봤다. 그녀는 이제 나를 보지 않고 연주에 열중했다. 그때부터 내 귀에는 신시사이저 소리만 분리되어 들리기 시작했다.


keyword
이전 02화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