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라군에 맨발로도 갈 수 있다면.

그럴 수 있을 거라 믿어

by 글린트

우리나라에서 ‘라오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아마 방비엥의 에메랄드빛 자연 수영장일 것이다.

‘블루 라군’

푸른빛의 물과 우거진 나무들의 조화가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핫플레이스, 라오스의 보물.


6년 전.

처음 라오스가 선교 여행지로 정해졌을 때 나도 똑같이 블루 라군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동남아의 따뜻한 날씨와 열대과일,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선교사님 댁에 짐을 풀고 일주일간의 선교 계획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우리가 소화할 일정 중에는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다니는 어느 유치원에 방문하여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하고 선물도 증정하는 행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가지고 놀 풍선과 페이스 페인팅 물감 등 여러 레크리에이션 도구를 잔뜩 싣고 유치원에 도착했다.

교실 안에 있던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눈을 반짝이며 밖을 내다봤다. 호기심과 기대가 가득한 얼굴들을 보니 이 귀여운 아이들과의 멋진 하루에 나 또한 들떴었다.


레크리에이션을 시작했다.

어설프게 외운 라오어로

“잘했어.”

“몇 살이니?”

“예쁘다, 멋지다.”를 연발하며 림보 게임도 하고 물풍선 게임도 했다.


딱히 재밌게 해주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넘어갈 듯이 웃고 손뼉 치며 좋아했다.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용 물감으로 나비나 공룡 따위도 그려주고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우리는 그 짧은 시간에 정이 담뿍 들었다.

즐겁게 모든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마치고, 이제 선물을 전달한 후에 돌아가야 했다. 차 트렁크에서 선물이 담겨 있는 커다란 상자를 꺼내왔다. 사실, 선물이라고 가져온 것은 라오스로 떠나기 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한 2000원짜리 삼선 슬리퍼였다.


라오스 단기선교를 준비하던 우리에게, 선교사님께서는 선물로 다른 것 사 오지 말고 저렴한 슬리퍼를 최대한 넉넉히 사 오라고 부탁하셨던 것이다.

선교사님께서 말씀하시니 슬리퍼를 사긴 샀지만... 이걸 받고 아이들이 실망할까 봐 나는 마음이 쓰였다.

그래도 아이들인데... 이런 필수품보다는 인형이나 장난감 자동차가 낫지 않을까 하면서.




커다란 선물 상자를 들어서 단상에 쏟았다.

검은색, 감색, 핑크색의 눈에 익은 슬리퍼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아이들의 실망한 표정을 상상하며 눈을 돌렸는데, 아이들의 눈은 놀라움으로 휘둥그레져 있었다.


그제야 내 눈에 아이들의 맨발이 들어왔다. 신발을 신은 아이들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은 맨발이었다.

맨발인 아이들을 보면서도 나는, 그들이 더워서 맨발로 다니는 것이지 신발이 없어서 그럴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작은 그 발.

흙과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그 작은 발의 피로함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슬리퍼가 쌓여 있는 단상 앞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고 하나씩 나누어주는데, 누구 하나 색깔에 불만을 품지도, 사이즈가 크다 작다 말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주면 주는 대로 함박웃음을 짓고 받아갔다.


받아서, 슬리퍼에 코를 갖다 댔다. 한 명, 한 명 슬리퍼를 받을 때마다 아이들은 코를 박고 슬리퍼 냄새를 맡았다.

물려받은 신발만 신어보다가 처음으로 깨끗한 새 신발을 가져보는 아이들. 신기한 그 ‘새것’ 냄새를 맡고 또 맡는 것이라고 선교사님이 나중에 말씀해 주셨다.


마음이 아팠다.

중국산 싸구려 슬리퍼를 그렇게나 소중하게 여기는 아이들에게 나는 미안해졌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제 보니 맨발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더워서가 아니라 신발이 없어서 맨발인 사람들...


방금 헤어진 그 아이들이 20년 후에 저런 모습으로 길거리를 다니면 어떻게 하지?


블루 라군에

저들을 위한 자리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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