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어 : 틈
처음엔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잊고 있다가 한 번씩 눈에 띄면 그제야 ‘아 저런 게 있었지.’하며 중얼거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 틈이 볼 때마다 조금씩 더 벌어져 있더니 이제는 사람 하나가 들어가도 모를 정도로 커져있었다.
“이래도 괜찮은가.”
걱정되는 마음은 컸지만 들여다볼 용기는 안 났다. 괜히 다가갔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모르는 척 못 본 척했다.
그런데 결국 그곳에 빠져버리다니. 진즉에 메꾸지 못했던 탓이다. 겉에서 바라보았을 땐 몰랐는데 빠지고 보니 아주 깊다. 너무 깊고 깊어서 허우적거리다가 그마저도 지쳐 그저 몸을 맡긴 채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고 만다. 이곳의 시작이 어디였는지 모를 만큼 주변은 깊고 어둡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몸을 웅크리고 가만히 귀를 막고 있는 것뿐이다. 어쩌면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이곳에 빠질 거라는 걸. 그리고 빠져나가기도 힘들 거라는 걸. 그렇지만 무기력하다는 이유로 신경 쓰지 않았다. 저절로 벌어진 틈이 저절로 아물었으면 했으니까. 왜 원하지 않았던 것이 나타나서 이렇게 사람을 잡아먹어버렸을까. 내가 잘못했던 걸까? 내가 바보 같았던 걸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동안에도 몸은 하염없이 깊어진다.
숨을 쉰다. 다행인 건 숨을 쉬는 게 어렵지 않다. 어쩌면 저 바깥에서 쉬었던 숨보다도 편안한 것 같다. 이대로 이곳을 나가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 나를 찾아줄까? 아니면 모두가 나를 잊을까? 모르겠다. 나를 찾아줄 만한 사람이 있었던가? 머릿속의 복잡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시끄럽다. 귀를 막아도 여전히 시끄럽다. 그럴수록 귀와 손바닥 사이의 공기를 최대한 빼내려고 노력해 본다. 그냥 이대로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럼 이 시끄러움도 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