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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Sep 16. 2022

발신자 표시 제한 전화가 왔다

여자 사람 역무원의 고충

 내가 한때 근무했던 지하에 있는 조그마한 역의 근무인원은 직원 한 명에 사회복무요원 두 명이 전부였다. 그래도 주변에 술집이 없는 조용한 주택가라서 근무 중에는 사고가 많지 않았다. 그 역에서 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지상에 있는 다른 역으로 이동한 후에 알게 되었다.


"주임님 새로 가신 역은 어떠세요? 다름이 아니라 주임님을 찾는 전화가 와서 역을 옮기셨다고 알려드렸습니다."


 지상에 있는 역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이 일했던 사회복무요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전보 소식을 듣지 못한 직원이 나를 찾는 줄 알았다. 잠시 뒤 역으로 발신자 표시 제한 전화가 왔다.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통화 내용이 조금 이상했다.


"친절히 모시겠습니다. ○○역 윤이나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첫차 시간이 어떻게 되나요?"

"저희 역은 5시 30분에 첫차가 있습니다."

"그 열차에 기관사가 없던데, 고장이 나면 어떻게 조치합니까?"

"역에서 상주하는 안전운행요원들이 열차에 탑승해서 고장 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열차는 총 몇 칸이죠?"


 마치 서비스 수준을 평가하는 것 같은 지엽적인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특이한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전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발신자 표시 제한 전화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걸려왔다. 내가 전화를 받으면 말없이 끊을 때도 있었고, 영양가 없는 질문들을 계속 늘어놓을 때도 있었다. 내가 근무하지 않을 때는 윤이나씨 어디 갔냐고 꼬치꼬치 캐묻다가 누구냐고 물으면 갑자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고 한다. 몇 달이 지나도록 전화는 계속 걸려왔다. 그의 전화를 받은 동료 역무원들은 나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스토킹 처벌법이 제정되기 전이었다. 물론 제정 이후에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적도 없는 법이긴 하지만, 그래도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명분이라도 되어줬을 그 법도 당시에는 없었다. 경찰에 신고해도 벌금 5만 원 정도가 전부일 게 뻔했다. 그는 나의 이름과 직장을 알고 있는데, 나는 발신자 표시 제한 전화번호 뒤에 숨은 그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친절하게 전화를 받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내가 나서서 단호하게 대응하는 수밖에. 나는 뭔가 어려워 보이는 법을 다 끌어모아 쪽지에 대본을 적고 근무복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쪽지가 꼬깃꼬깃해질 틈도 없이 또다시 발신자 표시 제한 전화가 울렸다.


"친절히 모시겠습니다. ○○역 윤이나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첫차 시간이 어떻게 되나요?"

"저희 역은 5시 30분에 첫차가 있습니다."

"그 열차에 기관사가 없던데, 고장이 나면 어떻게 조치합니까?"

"실례지만 누구세요? 왜 계속 발신자 표시 제한 번호로 전화를 거세요?"

"네? 고객인데요."


 고객의 입에서 고객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어딘가에 가야 하는데 잘 모르겠다든지, 무엇을 알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답하는 것이 일반적인 고객의 반응이다. 나는 준비했던 대본대로 계속 전화를 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사실 속으로는 떨고 있었지만 단호하게 들리길 바랐다. 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더 이상 발신자 표시 제한 전화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불안은 끝나지 않았다. 혹시나 그가 앙심을 품고 해코지를 할까 봐 걱정이 됐다. 인적이 드문 밤 시간이 되면 어디선가 그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남몰래 호신용 스프레이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 호신용 스프레이를 쓰다가 오히려 과잉 대응으로 고소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들었지만, 그래도 스프레이가 주는 작은 위안이 필요했다. 머릿속으로는 미지의 괴한을 향해 스프레이를 뿌리는 연습을 반복했고, 스프레이를 뿌리고 어디로 도망가야 안전할까를 고민했다. 나의 일상은 평온해 보였지만 그 평온함이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떠나질 않았다.


"네가 예뻐서 그래."

"네가 너무 좋은가 봐."


 몇몇 선배들의 위로는 나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말에 어떠한 악의도 없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았다. 하지만 내가 겪고 있는 이 불안을 단순한 애정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듯한 그 말들이 싫었다. 또, 잘못은 그가 하고 있는데 왜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걸까? 아무리 예뻐도, 아무리 친절해도 그런 공포를 느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선배들의 위로에는 악의가 없었지만 내가 겪고 있는 위협을 별거 아닌 가십거리고 만드는 것 외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지상역에서 지하역으로 옮길 때가 왔다. 다시 그 조그마한 지하역으로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지하역에서 나를 찾는 전화로 시작됐으니, 그는 분명 그 역을 이용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인사방에 그동안의 일을 구구절절 적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다른 호선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별 탈 없이 발신자 표시 제한 전화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일터인 지하철에서 나보다 더 심한 피해를 겪고 있는 여자 역무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일반 여성들 중에는 더 많을 것이다. 나는 경찰의 도움 없이, 법의 보호 없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내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무사히 벗어난 탓에 나와 같은 피해를 겪고 있는 다른 여성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꼴이 됐다. 스토킹 피해에 대해 사회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데 도움이 돼버렸다. 아직도 유명무실한 스토킹 처벌 법 탓에 법을 믿고 용기를 낸 용감한 여성들은 더 심한 피해를 입고 있다. 같은 패턴은 범죄가 반복되는데 아무것도 하고 있는 않는 사회를 보면 또다시 무기력해진다. 얼마나 많은 피해를 겪어야,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예뻐서 겪는 불편함이 아닌, 생명을 위협받는 공포라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페미세요?"


 사실 이 글을 쓰는 것을 많이 망설였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느끼지 않는 스토킹 범죄에 대한 불안을 많은 여성들은 겪고 있는데, 그 불안함에 대해 말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이런 현실적 위협에 대해 말하면서 내가 남성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사상 검열을 통과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느끼는 불안이 실제 하지 않는 과거의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제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느낀다. 나의 경험이 그저 이 글 속에 박제된 어떠한 무게도 없는 티끌이더라도 그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무기력해진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싶다.


 어쩌면 이 글은 내가 느끼고 있는 상실감과 무기력함을 털어버리고 싶은 이기적인 나의 흔적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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