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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Oct 03. 2022

어느 비 오는 날의 브런치

브런치북을 발간한 소회

 쉬는 날 오전. 느지막이 일어나서 베이글을 데우고 커피를 한잔 내렸다. 오늘은 오랜만에 가을비가 내린다. 창밖의 소음을 다 가려주는 빗소리가 웬일인지 듣기가 좋다. 형광등은 다 끄고 향초를 켠다. 창밖의 어슴푸레한 빛과 초의 조명만으로 어둑해진 집안이 뭔지 모를 차분함을 준다. '비 내리는 오후'라는 제목이 붙은 음악을 틀어본다. 물론 지금은 오전이지만 빗소리와 제법 잘 어울리는 게 선곡도 만족스럽다. 베이글을 오물거리며 씹는 입도, 빗소리를 듣고 있는 귀도, 낮은 조도에 편안해진 눈도, 향초의 은은한 향을 맡고 있는 코도 즐겁다.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 끝의 감각이 느껴진다. 나는 오늘 브런치를 참 충실히 즐기고 있구나.


 브런치를 오늘처럼 했다면 힐링이었을 텐데, 그동안 뭐에 씌었는지 브런치에서 일만 하고 있었다. 물론 올해는 50명이나 뽑힌다는 대형 브런치북 프로젝트가 있으니 욕심이 났던 게 사실이다. 그놈의 욕심, 욕심이 언제나 문제다. 가볍게 브런치 먹으면서 읽을 수 있는 글을 추구하는 브런치에서 왜 이렇게 작가들은 책 낼 욕심에 전전긍긍하고 있을까. 조회수와 구독자수의 허상도 다 그 욕심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멀리 있는 사람 찾을 필요도 없이 다 내 얘기다. 등록된 글도 많고 구독자 수도 많은 작가님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얼른 그들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에 자꾸 글쓰기 노동을 하게 됐다. 글 하나만 더, 딱 이것까지만, 이 부분만 더 수정하자, 제발!


 어찌어찌 첫 브런치 북을 발간했다. 사실 아직도 그 주제로 할 얘기가 많이 남았다. 에필로그를 쓰면서도 내가 이렇게 할 말이 많은데 에필로그를 쓰는 게 맞나 싶었다. 미련이 잔뜩 남아서 어지럽게 나열된 문장들을 지우고 지워 브런치북으로 완성했다. 그래도 아쉬움보다는 속이 시원한 걸 보면 그동안 애를 많이 쓰긴 썼나 보다. 다시 보면 수정할 부분이 많겠지만 우선은 아직 내 능력은 여기까지입니다 하고 만족해 보려고 한다. 나중에 글쓰기 실력이 더 늘고 나면 부끄러워 숨고 싶어지겠지만 그건 미래의 나에게 맡겨두자. 하지 못한 말들은 매거진을 통해 더 담아내려고 한다. 이제는 브런치북 한 권 발행했다고 다른 작가님들의 브런치북이 궁금해졌다. 여기저기 기웃거려보니 매거진으로 발행됐을 때보다 브런치 북으로 묶여있을 때 재미가 배가 되는 글들이 있다. 그런 글들을 읽고 있으면 또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샘솟는다. 이 죽일 놈의 욕심.


 앞으로는 노동으로 브런치를 하지 말자. 비 오는 오늘 오전의 브런치처럼 여유롭고 평온한 하루를 위해 글을 써야겠다. 책이 되든, 나만의 일기장이 되든 내가 힐링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지 않을까? 아직 브린이는 갈 길이 멀다. 또 욕심이 생겨서 능력 밖의 일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면 오늘의 브런치를 떠올려야겠다. 어느 비 오는 날의 일기 같은 브런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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