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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Feb 23. 2021

K-장녀의 엄마노릇

엄마는 어릴 때 받은 설움에 대해 종종 이야기해 주었다. 외할머니가 딸만 셋 줄줄이 낳다 막내로 아들 하나를 낳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될 때까지(?) 자식을 낳았을 거라며. 대를 이어야 한다는 집념이 유달리 강했던 외할아버지에 대해 원망을 늘어놓았다. 여자가 학교에 가서 뭐 하냐고 걸핏하면 학교를 그만두라고 그래서 얼마나 서러웠는지 모른다고. 그러면서도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엄마와 이모들은 막내 외삼촌에 대해 좀 별스런 태도를 가진 것 같았다. 막내라서 부러 더 챙기는 것인지, 삼촌이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챙긴다고 해야 할까. 어린 내가 보기에도 엄마와 이모들의 태도는 모순된 것처럼 보였으니. 따지고 보면 삼촌이 가만히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광경이란 마치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감히 내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는 무형의 무엇처럼 여겨졌다. 보살핌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믿음이 굳어졌다.

외가에서 일어난 일에 특별한 심상을 갖고 있는 데는 엄마가 나와 동생들을 키울 때도 그런 태도를 적용해왔기 때문이었다. 장녀에, 남동생만 둘인 나는 좀 제멋대로인 편이어서 동생들을 막 부려먹기도 하고, 좀 얄밉게 굴기도 했다. 그게 엄마 태도 때문이었는지, 그래서 엄마와 자주 부딪쳤는지 그 선후관계는 모르지만 관련해서 엄마한테 많이 혼났다. 첫째이고 누나인데 동생들을 잘 안 돌봐준다고. 나로서는 나도 같은 어린이인데 왜 돌봐야 하냐며 항변했고, 지금 돌아보면 뒤틀린 형태로 동생들에게 못되게 굴었던 게 아닌가 싶다.     


엄마는 집안일이나 심부름을 내게만 시켰다. 아주 어릴 때야 고분고분 했겠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던 때부터는 다른 일로 바빠서, 혹은 그냥 심통이 나서 잘 하지 않는 편이었다. 젠더 감수성 같은 건 1도 모를 때지만 직관적으로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때마다 엄마는 동생들은 아직 어리지 않냐고 했지만 동생들이 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참 오래도록, 질긴 저항의 세월이었다.

그러니까 엄마는 어린 시절에 받은 설움을 고스란히 내면화한 셈이었다. 가부장적인 외할아버지가 딸들을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닌 것 같았지만. 다만 그 시절의 문법에 너무나 충실했고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거기에는 이런저런 실용적인 이유가 덧붙여져 있기도 할 것이다. 농사를 짓던 농촌에서 아들의 존재와 딸의 효용이 같을 수 있겠냐는. 실제로 우리 외삼촌은 교복 입고 학교만 다녔지 집안일이나 농사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지금도 중국, 인도 등 일부 나라나 혹은 지역에서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낙태를 하거나 영아살해를 하는 일이 있는 걸 보면 잘못된 믿음이라도 뿌리는 상당히 깊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 이 내면화 문제에 나로서도 자유롭다고만 말할 수 없는 것이 딸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나 또한 그렇지 않은가 늘 돌아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는 딸이고 아들이고 각자 해야 할 일은 스스로 하도록 한다. 둘 다 설거지도 하고, 자기 방 청소기는 스스로 돌리고, 속옷 빨래도 일찌감치 알아서 하도록 했다. 내가 아프거나 할 때 끼니 정도는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기 때문에 한두 가지 음식을 만들 줄 알도록 요리도 가르치고 있다.

그럼에도 가끔 멈칫 하는 때가 있다. 둘이 재미있게 노는데 유난히 딸아이의 태도가 거슬린다는 생각이 올라올 때 그렇다. 약간 나사 빠진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웃는 건 딸이나 아들이나 같은데 딸애의 행동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딸애의 행동을 지적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괜찮은 것도 아니다. 마음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시끄러워서 그런 거라면 같은 감정을 아들에게도 느껴야 옳다. 분명 어떤 면에서 나는 딸아이의 행동을 재단하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틀에 가두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 직접 잔소리를 하거나 지적하지는 않는다고 해서 얼굴표정이나 미묘한 말투까지 가릴 수는 없다. 소극적인 의견 표명의 안 좋은 사례. 내 표정이 보이는 것 같다. 이것은, 엄마가 어릴 때 내게 보여주었던 그 표정, 그대로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을 가만히 떠올려 본다. 당시는 표정의 의미를 해석하려 시도도 안 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고 좀 더 큰 다음에는 엄마의 표정에 조금 아팠을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집에서 마음이 떠난 때가 그즈음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집에 마음을 두지 못한 청소년이 택할 수 있는 옵션이란 친구밖에 없고 또 어쩌면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었을 수도 있고. 마음이 떠나면서 몸도 집을 떠나 있을 때가 많아졌고 그렇게 어른이 되는 과정에 놓이게 되었으리라.

새삼스레 엄마가 내게 물려준 유산에 대해 원망을 돌리려는 게 아니다. 관련해서 분명히 개선의 여지와 선택의 옵션은 내게 있었으므로 누구 한 사람만의 탓이라고 할 수도 없다. 엄마가 물려준 유산이 자랑스럽진 않지만 모든 걸 엄마의 탓으로 돌리는 잘못을 범하고 싶지도 않다. 나이를 먹고 엄마의 처지에서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아쉽고 서운함을 느낄만한 일들이 더러 있지만 당시에 엄마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잊지 않고 있다. 행동 이면에 있는 동기의 선함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모든 것을 고려하더라도 나의 얼굴 표정은 나의 통제영역에 있는 무엇임이 분명하다. 나의 선택이자 나의 책임. 이걸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무딘 젠더 감수성? 선택적 젠더 차별? 이중 잣대? 그게 뭐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딸아이가 내 얼굴에 떠오른 표정의 의미를 절대로 알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러려면 실체를 분명히 파악하고 잘못되었다는 걸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깨어있는 수밖에 없다. 아이가 자라고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고 어른이 되는 필수적인 과정이지만 그 흐름이 최대한 자연스럽기를 바란다. 내 품을 떠나는 이유가 내가 밀어낸 탓이 아니기를.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는 내 편이라는 믿음만은 잃게 되지 않기를 바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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