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 May 03. 2021

장래희망 : 힙한 채식주의자

어떤 앎은 내 안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지만 어떤 앎은 평생 쌓아온 세계를 한 방에 무너뜨리며 온다. 혁명 같은 그런 앎은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작은 고양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라는 걸, 나는 동물적으로 알았다.
p. 204, 『그냥, 사람』     


『그냥, 사람』 홍은전 작가의 남편은 40대가 되었으니 사는 패턴 하나를 바꿔야겠다며 왼손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홍 작가는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채식을 시작했다고 썼다. 장애인 야학 선생님이었던 홍은전 작가가 이전에도 동물권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반려묘와 함께 살아가게 되면서 관심이 커진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니 두달치 수입의 반 정도를 털어 캣 타워를 사고, 식당에서 비빔밥을 주문하면서 ‘달걀은 빼달라’는 요구를 처음 하게 되었으리라.

어떤 면에서 안다는 것은 꽤 불편한 일이 될 수 있다.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이라고. 가끔 지인들 가운데 세상 편하게 사는 사람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 참, 내가 뭘 그리 많이 안다고.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불편함은 다 떠안고 사는 나란 사람의 인생이 참 너저분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나는 이런 변화에 대해 한 번 건너면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자주 표현하곤 한다. 살면서 민감하게 느끼는 것들, 예를 들면 성인지 감수성이나 동물권, 쓰레기에 대한 인식들이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평소 가방 없이 외출하기를 즐기는 내가 텀블러가 없으면 소비하게 될 플라스틱 컵이나 빨대가 눈에 밟히고, 장바구니가 없으면 차라리 장을 안 보고 마는 습관이 좀 어이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냉장고가 텅텅 비었어도 뭐, 한끼쯤 대충 먹으면 어때. 어쩌면 편리한 핑계인지도 모르겠다.

외식할 때도 참 불편하다. 채식을 하면서부터 한정식 집을 가는 게 아닌 이상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정말 (책에서 나오듯) 비빔밥, 칼국수뿐이다. 그나마 멸치육수를 안 먹는 비건인 경우에는 칼국수나 떡국, 잔치국수 같은 음식도 먹을 수가 없다. 건강한 식단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잘못하면 밀가루 파티가 따로 없다.

그쯤 되면 채식을 안 하는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기어이 핀잔을 준다. 좀 적당히 먹고 살아.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니. 안다. 나 하나의 힘 가지고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그리고 당신이야말로 착각도 적당히 하시라. 세상을 바꾸려는 게 아니다. 나는 그저 대형마트 매대에 포장돼 있는 고기가 한때는 살아 움직이기를 좋아했던, 바람과 햇빛과 동무들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을 나와 같은 존재라는 점을 외면할 수 없을 뿐이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나고 자란 동물이라 자연에 대해 완전히 무지해 동경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그들이 도축당하는 순간 느꼈을 공포와 무력감은 분명히 존재하며 나는 그것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을 뿐이다.

물론 이런 나도 그냥 한순간에 정신줄 놔버리고 되는대로 살고, 먹고 싶은 대로 먹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가끔 김밥 속에 든 달걀지단이나 멸치육수, 볶음밥 속의 새우 정도에는 눈감아버릴 때도 있다. 그러나 직접 요리를 해서 먹을 때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아까 말한 대로 나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그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육아 과정에서 수없이 접하게 되는 미신들. 우유를 먹어야 키가 큰다, 소고기를 먹여야 아프지 않고 잘 자란다 등등. 그런 말에 휘둘릴 정도는 아니지만 가족들에게 채식을 강요하지는 않고 있다. 잔소리와 비난을 피해가기 위한 변명일지 모르겠으나 채식이든 아니든 아이들이 선택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채식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에게도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는 걸 자주 보여주고 있다. 왜 채식을 하는지 설명하고 지금 먹고 있는 채식 반찬이 얼마나 맛있는지 일부러 과장해 리액션도 한다. 설득보다는 매혹이 효과적이라던데. 별로 맛없어 보이는데(요리 똥손) 굳이 맛있다고 강조하는 엄마의 오버액션을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가능하다면 나 사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설득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내게 그만한 영향력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채식이나 플라스틱 줄이기 같은 사는 습관이 꽤 그럴듯하거나 힙해 보인다면 강의 이쪽 편으로 한두 명쯤 당겨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채식이든 뭐든 내게 긍정적인 변화가 눈에 보이면 좋겠다. 그러려면 홍은전 작가의 남편처럼 오른손잡이가 의식해서 왼손을 써보는 정도의 노~오력쯤은 해야 하나 싶다. 이렇게 뭐든 쉽게 가려고 하니 문제다. 손을 바꿔서 쓰는 정도로 힙한 게 가능하겠나. 쯧쯧.

매거진의 이전글 바운더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