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 May 24. 2022

인정욕구와 권력에의 욕망

영화 <바이스>를 보고

미국에 이런 농담이 있다고 한다. 어릴  헤어진 자식이  있는 사람이 수십년 동안 잃은 자식들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이유가  명은 원양어선을 타는 직업을 가졌고, 다른  사람은 미국 부통령이었기 때문이라는, 강력한 대통령제 미국사회에서 그만큼 존재감이 떨어지는 부통령이라는 역할을 꼬집은 농담 말이다.


영화 <바이스>의 주인공인 딕 체니가 바로 미합중국의 부통령이다. 그는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에 부통령을 지낸 실제 인물이다.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배우가 역할을 위해 엄청나게 살을 찌웠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으로 훌륭한 연기를 해냈다. 딕 체니가 실제로 그런 말투와 표정으로 말하는지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실제 딕 체니보다 더 딕 체니 같았을 거라는 믿음이 생길 정도의 연기였다.

영화를 보면서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에 한 번 감탄했고 다음은 딕 체니라는 실제 인물과 그 가족들이 보여주는 욕망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사람이란 저렇게까지 권력에 비굴해질 수도 있고, 탐할 수도 있는 존재구나. 좋은 의미는 아닐 테지만 중의적인 의미에서 감탄을 여러 번 했다.

사실 딕 체니보다 그의 아내의 욕망에 더욱 감탄했다. 사실상 졸업 후 노동이나 하며 살아가던 별 볼일 없는 남자였던 딕 체니를 각성하게 만든 건 아내의 협박과 설득이었다. 맥락만 표현하자면 “언제까지 이렇게 살거냐”면서 “당신이 이렇게 형편없는 남자라면 나는 당신 곁에 있지 않을 거야”라는 아주 명확한 가이드를 제시했다. 확실히 그 이후 딕 체니는 달라졌다.


나는 이 맥락에서 미국 특유의 가족주의와 권력욕을 읽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한다는 것과 사회의 정의가 충돌했을 때 그는 어떤 선택을 했었는지. 영화 초반에서 같이 노동일을 하던 동료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이상한 자세로 뒤틀려 괴로워하는 데도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담배를 꺼내 물던 딕 체니라는 한 인간의 선택이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 아닐는지.

그는 말하자면 가족과 자신의 권력욕, 그러니까 욕망을 쫓았던 사람이다. 동성애자인 자식이 자신의 길에 방해가 될 거라는 걸 알았을 때 그는 자식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선택을 한다. 어쩌면 그의 인생 최고의 고민거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9ㆍ11사태가 터졌을 때도 무늬만 대통령인 조지 부시를 대신해 순간적으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철저히 자신의 욕망과 이득에 충실했던 사람에게 가장 큰 약점이자 고민거리는 결국 가족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그 명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인상적인 인물인 조지 부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이야기이다.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철없는 망나니 같은 그가 감히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온 것도 아버지 부시에게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 지점에서 서글픈 의문 하나가 떠오른다. ‘국민이 키웠다’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은 대체 왜 대선에 나온 것일까. 누가 봐도 대통령 감이 아닌 것이 확실하고 본인도 별 확신이 없어 보이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인물이 대통령에 나온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윤석열 역시 아버지라는 권위에 항상 눌려왔던 존재이고, 내막을 자세하게 알 순 없지만 아내에게 상당히 휘둘릴 수밖에 없는 성정으로 보이는데, 그 또한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은, 어쩌면 버림받지 않으려는 욕구가 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뜩치 않은 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 마당에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되므로 밤을 꼬박 새워가며 그 질문에 매달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고통을 느낀다. 그래봐야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앞으로 지옥 같은 5년을 견뎌내야 할 판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우정의 유효기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