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이스>를 보고
미국에 이런 농담이 있다고 한다. 어릴 적 헤어진 자식이 둘 있는 사람이 수십년 동안 잃은 자식들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가 한 명은 원양어선을 타는 직업을 가졌고, 다른 한 사람은 미국 부통령이었기 때문이라는, 강력한 대통령제 미국사회에서 그만큼 존재감이 떨어지는 부통령이라는 역할을 꼬집은 농담 말이다.
영화 <바이스>의 주인공인 딕 체니가 바로 미합중국의 부통령이다. 그는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에 부통령을 지낸 실제 인물이다.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배우가 역할을 위해 엄청나게 살을 찌웠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으로 훌륭한 연기를 해냈다. 딕 체니가 실제로 그런 말투와 표정으로 말하는지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실제 딕 체니보다 더 딕 체니 같았을 거라는 믿음이 생길 정도의 연기였다.
영화를 보면서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에 한 번 감탄했고 다음은 딕 체니라는 실제 인물과 그 가족들이 보여주는 욕망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사람이란 저렇게까지 권력에 비굴해질 수도 있고, 탐할 수도 있는 존재구나. 좋은 의미는 아닐 테지만 중의적인 의미에서 감탄을 여러 번 했다.
사실 딕 체니보다 그의 아내의 욕망에 더욱 감탄했다. 사실상 졸업 후 노동이나 하며 살아가던 별 볼일 없는 남자였던 딕 체니를 각성하게 만든 건 아내의 협박과 설득이었다. 맥락만 표현하자면 “언제까지 이렇게 살거냐”면서 “당신이 이렇게 형편없는 남자라면 나는 당신 곁에 있지 않을 거야”라는 아주 명확한 가이드를 제시했다. 확실히 그 이후 딕 체니는 달라졌다.
나는 이 맥락에서 미국 특유의 가족주의와 권력욕을 읽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한다는 것과 사회의 정의가 충돌했을 때 그는 어떤 선택을 했었는지. 영화 초반에서 같이 노동일을 하던 동료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이상한 자세로 뒤틀려 괴로워하는 데도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담배를 꺼내 물던 딕 체니라는 한 인간의 선택이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 아닐는지.
그는 말하자면 가족과 자신의 권력욕, 그러니까 욕망을 쫓았던 사람이다. 동성애자인 자식이 자신의 길에 방해가 될 거라는 걸 알았을 때 그는 자식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선택을 한다. 어쩌면 그의 인생 최고의 고민거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9ㆍ11사태가 터졌을 때도 무늬만 대통령인 조지 부시를 대신해 순간적으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철저히 자신의 욕망과 이득에 충실했던 사람에게 가장 큰 약점이자 고민거리는 결국 가족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그 명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인상적인 인물인 조지 부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이야기이다.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철없는 망나니 같은 그가 감히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온 것도 아버지 부시에게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 지점에서 서글픈 의문 하나가 떠오른다. ‘국민이 키웠다’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은 대체 왜 대선에 나온 것일까. 누가 봐도 대통령 감이 아닌 것이 확실하고 본인도 별 확신이 없어 보이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인물이 대통령에 나온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윤석열 역시 아버지라는 권위에 항상 눌려왔던 존재이고, 내막을 자세하게 알 순 없지만 아내에게 상당히 휘둘릴 수밖에 없는 성정으로 보이는데, 그 또한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은, 어쩌면 버림받지 않으려는 욕구가 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뜩치 않은 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 마당에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되므로 밤을 꼬박 새워가며 그 질문에 매달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고통을 느낀다. 그래봐야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앞으로 지옥 같은 5년을 견뎌내야 할 판이니까.